[살며 생각하며] '미안합니다'의 생활화..최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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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자 서울 이태원거리를 지나다가 유난히 몸집이 큰 미국인이 한 상점앞에서"미안합니다"라고 소리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한번도 아니고 두세번씩 반복하는것을 보니 무엇인가 사연이 있을듯 싶어상점주인에게 물어보았다. 상점주인의 말에 의하면 그 미국인은 손님중 한사람이 자신을 밀치고나갔으니까 그사람이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것이다. 상점주인으로서는 미국인도, 밀치고 나간 한국인도 손님이니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한국인 손님은 상점안에서들려오는 미국인의 자신을 향한 불만스런 "미안합니다"란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점밖의 진열대에서 계속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사람을 밀치는 실례를 하고 그에 대한 항의가 계속되는데도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할줄 모르는 그 여인의 무표정과 무신경에착잡한 마음을 지울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 여인이 안에서 외치는 소리를 알아듣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상점주인의 귀띔에도 불구하고 멀뚱멀뚱 서있는 모습을 보자 같은 한국인으로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흔히 밀친 사람은 바쁘게 지나쳐 버리기 일쑤이고 밀침을당한 사람도 기분나쁜듯 그사람의 뒷모습을 잠시 노려보는 것으로 끝난다. 한국인은 외국인에 비해 "미안합니다"란 말에 인색한 편이다. 길을 지나며 서로 부딪치거나 밀치게돼도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생략하는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이 사소한 무례에 대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또는 한국에 살고있는 외국인은 의아해할 것이 분명하다. 외국의 경우는 국민학교에서부터 "- 해주십시오" "고맙습니다""미안합니다"란 말을 몸에 배도록 배우고 습관처럼 입에 달고다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이러한 조그만 매너를 생활화하지 못할까. 바쁜 생활때문이라고들 하지만 자기자신의 체면을 지킬수 있는 "익스큐즈 미"란 한마디 말쯤은 몸에 배어 있어야 되지 않을까. 멋있게 잘 차려입은 여인(남성도 마찬가지)이 군중에 밀려 별 감각없이옆사람을 치면서 지나가면 외국인은 의아해하며 신기한듯 쳐다보게 된다. 이때 그 여인은 자신의 멋진(?) 외모때문에 그 외국인이 자기를 쳐다본다는착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이다. 순간의 예의바른 한마디가 사람을 얼마나 다르게 보이게 하고 그나라 위상을 높이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국제화시대를 맞은 이제 한국인의 이미지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한마디를 생활화하는데 우리는 좀더 노력해야 한다. 역설적인 얘기같지만 만약 이같은 기본적인 예의가 생활화되지 않는다면아예 외국인에게 한국을 소개할때 길에서 사람과 부딪쳐도 사과하지 않는것이 오래전부터 내려온 한국인의 전통(?)이라고 알려주는 편이 오히려낫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미안합니다"란 말을 더욱 인색하게 만드는 것은 길을 건너며 층계를내려가며 부딪치는 어깨의 무게를 별 감각없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우리의 "무신경"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도 우리끼리의 그러한 암묵적 관습에서 벗어나 다른 외국사람들과 섞여 살게 될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려서부터 작은 예의를 익히고 실천할때, 그것을 가정에서부터 지도할때비로소 세계가 한동네처럼 가까워지는 국제환경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적응할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기본적인 매너를 갖춘 X세대 Y세대의 출현을 원한다. 진정한 "멋"은 외모와 의상에 앞서 예의바른 행동이 선행돼야 한다. "미안합니다"가 생활화되면 걸핏하면 언성을 높이는 조급한 우리네 성격을조금은 잠재우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