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노시인의 사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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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규동씨는 46년이라는 긴 세월을 객지에서 보내고 있는 나그내다. 그래도 그는 아직 북에 두고온 어머니와 고향을 잊지못해 줄곧 자신의기속에서 어머니와 정겨운 편지를 주고 받으며 어머니를 만나는 꿈을 꾸어오고있는 사람이다. 헤어질때 60세였던 어머니가 살아계실리가 없어도 그는 아직도 동구밖에서아들을 기다리고 계실 어머니만을 생각하고 있다. "꿈에 네가 왔더라 스물 세살때 훌쩍 떠난 네가/마흔일곱 살 나그네되어/네가 왔더라/살아 생전에 만나라도 보았으면/허구한 날 근심만 하던네가 와더라..." 꿈속에라도 그리운 어머님을 만나 무릎에 머리를 묻고 엉엉 울고만 싶은 심정을 "북에서온 어머님 편지"라는 시속에 그는 눈물겹게 그려 놓았다. 노시인의 고향은 함북 회령에서도 산속을 60리나 더 들어가야 하는 행영. 옛 육진터에 자리잡은 고읍인데, 백두산에서 150리 떨어져 있는 두만강가의국경 마을이다. 종성에서 눈덮힌 백두산 관모봉을 바라보며 학교에 오가던일과 두만강에서 썰매를 타고 수영을 하던 추억을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중국 연변의대 3학년때 해방을 맞아 고향 에 돌아온 그가 의사였던 부친의출신성분 때문에 한사코 말리는 어머님과 누님들, 그리고 동생을 남겨놓고"서울가서 3년만 있다 오겠다"고 떠난 것이 벌써 46년전 옛이야기가 되었다. "솔개 한마리/나즈막히 상공을 돌거든 내 어린날의 모습같이/그가 지금/어딘가 가고있는 것이다/생각하세요/솔개 한마리/빈 하늘을 돌거든 차가운 흙속에서라도/어여삐 웃어주세요" 고향에 많았던 것이 솔개라서 고향에서 어머니가 꼭 자신을 생각하며 솔개를 쳐다보고 계실것 같은 생각이 들어 쓴 "어머님전상서"라는 애틋한 시의 한 구절은 읽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촉촉하게 적셔준다. 노시인의 마음속에 앙금처럼 가라앉은 조국분단의 응어리는 세월따라불어나 한대는 큰 모여움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의주장을 높은 목소리로 외쳐 대지는 않는다. 통일만이 가장 다급하고 절실한 자신의 대명제임을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속에 승화시켜 가고 있다. 그에게 고향에 가게되면 제일먼저 무엇을 할 생각이냐고 물으면 그는이렇게 대답한다. "두만강을 찾아가 한번 목놓아 울고나서 흰머리를 날리며 어릴때처럼 씽씽썰매를 타고싶어요. 그날이 올때까지 열심히 살아 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