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사망] '장례위원장이 후계자' 관례..공산권 권력승계

공산주의국가에서 후계자는 공산당 가운데서도 핵심세력간에 치열한암투를 거쳐 탄생돼 왔다. 후계자는 보통 전임자의 장의위원장을 맡았다. 따라서 장의위원장을 누가 맡느냐는 것이 권력투쟁의 핵심이 되는 셈이다. 그런만큼 공산국가에서 후계자선정을 둘러싼 암투과정은 철저히 비밀에쌓여왔다. 서방세계에서는 이때쯤 최고통치자의 와병설등이 전해지면서 권력투쟁에 돌입한 것을 알게된다. 지금까지 예로는 이같은 사례가 가장 많이 발생한 나라는 공산주의 종주국인 구소련. 비교적 최근의 예로는 지난83년 브레즈네프의 사망을 둘러싼 암투과정이 가장 극적이었다. 우선 브래즈네프의 와병설이 알려지면서 공산당에 권력투쟁의 조짐이나타났다. 그러나 당시 권력투쟁은 후계자로 거의 내정되다시피했던 당이론가인 수슬로프가 갑자기 죽자 권력승계서열에 대혼란이 일어나면서 더욱 치열해졌다. 브레즈네프의 아들과 사위등이 연이어 구속되면서 권력투쟁의 정도가 심각하다는 것이 외부로 알려졌다. 서방측은 그래도 후계자는 브레즈네프의 오랜 친구이자 당중앙위 서기겸정치국원인 체르넨코가 승계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한동안의 암투속에 장의위원장으로 발표된 사람은 안드로포프였다. 그는 KGB출신으로 당초 주요 관심대상자로 부상하진 않았던 인물이었다. 그뒤 84년2월 안드로 포프가 병으로 사망하자 후계자는 자연스럽게 체르넨코에게로 승계됐다. 체르넨코가 공산국가에서 최단기권력자라는 기록을 세우고 1년여만에사망하자 소련은 다시 권력투쟁에 휩쓸렸다. 이때 예상을 뒤업고 부상한 인물이 당시 정치국원이었던 고르바초프였다. 중국 모택동주석이 죽은후에도 이같은 권력투쟁은 재연됐다. 그러나 서방측의 관심속에 후계자로 부상한 인물은 서방세계에 거의알려지지 않았던 젊은 정치국원 화국봉이었다. 공산국가에서는 권력투쟁이 계속되는 과정에서는 일체의 대외적 정치적행사가 중단되며 후계자가 정해지면 비로서 공영방송과 신문을 통해 일제히그 결과를 발표한다. 이때가 되면 방송은 정규프로그램을 일체 중지하고 클래식음악을 내보낸다음 얼마후 최고통수권자가 사망했다는 사실과 장의위원장에 누가 선정됐다고 발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