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대학의 자율

총장이 단상에 올라 졸업식사를 시작하자 졸업생들이 의자를 돌려 뒤돌아앉은채 노래를 불러댔다. 뒤이어 문교장관이 등단하자 졸업생들은 야유를퍼부으며 일제히 일어서 식장을 빠져나갔다. 졸업생 5,000여명중 겨우200여명만이 자리를 지켰다. 지난86년 제40회 서울대졸업식장의 비극적인 풍경이다. 대학구성원의의사와는 관계없이 대통령이 총장을 임명했던 암울한 시대에 있었던 일인데 먼 옛날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무렵까지만해도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적 운영은 교수나 학생들의 공통된 구호였다. 정치상황의 급변에 따라 교수들의 꿈이 이루어져 지금은 서울대를 비롯 국공립대 25개,사립대 40개교에서 직선제 총장이 탄생했다. 미래의 지도자를 길러내는 대학의 최고 행정책임자이며 시대정신의 산실을이끌어 가는 사령탑인 대학총장은 권위와 지성면에서 탁월하고 사회적으로선망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요즘 직선으로 뽑힌 대학총장들에 대한 평가는 의외로 기대밖이다. 총장에 뽑히면 주위에서 "또 아까운 사람 하나가 희생되는구나"하는 우려의 소리가 먼저 나오는 것을 보면 그 분위기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미국의 교육학자 클라크 커는 현대의 대규모 다목적 다기능대학을 단일목적 단일기능의 통일체로서의 "유니버시티"에 비교, "멀티버시티"(multiversity)라고 명명했다. 또 마틴 트로는 현대 선진국가의 대학교육은 엘리트단계에서 대중화단계를 거쳐 보편화단계로 옮겨가고 있다고 규정지었다. 우리나라 대학의 경우 지금 엘리트단계에서 대중화단계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는 셈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멀티버시티의 특색을 이미 띠고 있는것 같다. 대학의 성격이 이처럼 변한만큼 대학총장도 더이상 고전적인 "상아탑의상징"에 머물수만은 없다. 대학경영의 전문가가 되어야하고 뛰어난리더십과 덕망을 지닌 인물이어야 "위대한 총장" 소리를 들을수 있다. 4년제대학 총장들이 총장직선제의 폐지를 건의했다는 소식이다. 그이유도 분파조성 공약남발등 일반사회의 선거과열현상에서 나타나는 것과 흡사한 폐해때문이라니 듣기조차 민망스럽다. 잘못된 과도기의 폐해는 고쳐나가야겠지만 뒷걸음질을 쳐서는 안된다. "자유의 화단"처럼 가꾸기 어려운것도 없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대학구성원들의 자성이 요구되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