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칼] (528) 제2부 정한론

산업 분야뿐 아니라, 영국의 입헌군주제(립헌군주제)라는 정치체제에대해서도 사절단은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것은 어쩌면 왕정복고를 이룩한 일본이 앞으로 수립해야 할 통치형태의 본보기가 아닌가 싶었다. 군주가 최고 통치자이기는 하되 헌법을 제정하여 의회를 두고, 의회에서구성된 내각이 실권을 행사하고서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제도이니, 일본에적용하기에 안성맞춤인 것 같았다.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가이기 때문에 미국식의 대통령제는 아예 생각도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입헌군주제에 대해서도 오쿠보는 깊은 흥미를 가졌고, 누구보다도 관심을기울였다. 더위가 지나가면 돌아올 줄 알았던 여왕은 가을도 깊어가는 11월 4일에야귀경했다. 그러니까 사절단이 런던에 도착한 것이 7월15일이었으니, 석 달 이십일만에야 여왕을 알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무렵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대영제국에 와서 여왕을 예방하지 않고 떠나갈 수는 없는 일이어서 여기에서도 사절단의 여행 일정은 많이 지체되어차질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빅토리아 여왕을 만나러 갈 때 전권대사인 이와쿠라를 비롯해서 네 사람의부사는 그 모습이 일변되어 있었다. 서양사람들이 곧잘 "머리 위의 피스톨"이라고 부르며 웃었던 존마게도 자취를 감추었고, 하오리하카마 대신 서양식 예복인 연미복차림이었다. 런던에서 옷을 새로 맞추었고, 이발관에 가서 단발을 하여 하이칼라머리로바꾸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영국에 와서 개화인으로 탈바꿈을 해버린 것이었다. 빅토리아 여왕과의 면담은 윈저케슬 이궁에서 이루어졌는데, 이와쿠라 전권대사로부터 메이지 천황의 이름으로 된 국서를 받은 여왕은 앞으로 양국의 친선이 더욱 돈독해져서 무역이 한층 신장되기를 바란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여왕의 옆에는 남편인 알버트공이 서 있었다. 여왕은 알버트공을 가리키며 "남편이 귀국을 방문했을 때는 많은 후대를 해주셔서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요"하고 예를 표했다. 알버트공이 3년전에 초청을 받고 일본을 친선 방문했던 것이다. 막부 타도를 위한 내전이 계속되고 있을 때 영국은 교토의 황실 쪽을 지지하여 은밀히 후원을 했기 때문에 메이지 신정부가 들어서자 감사의 표시로 영국 여왕의 부군을 초청했었다. "그때는 정말 여러가지로 고마웠지요. 감사합니다" 알버트공도 싱그레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머리를 숙여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