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시론] 외국어와의 '전쟁'..박춘호 고려대법대/국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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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86년 봄에 스위스 주리히에 있는 IBM연구소의 알렉스 물라(Alex Muller)박사는 초전도체에 관한 중요한 논문을 독일어로 발표했다. 그런데 미국의 과학자 대부분은 독일어를 몰라서 이 논문이 발표되었다는 사실도 몰랐고 읽었던 사람들은 그 결론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일본을 포함한 다른나라의 전문가들은 이 논문을 즉시 활용할수 있었다. 결국 이분야의 연구에 있어서 미국만이 거의 1년쯤 뒤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기사를 일본의 저팬타임스가 전재한 것인에 그 결론은 미국 전문지에 발표되는 논문은 외국의 전문가들이 즉각적으로 소화하는데 미국의 전문가들은 외국어실력부족때문에 외국의 문헌을 제때 활용못해 국제경쟁에서 뒤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8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도 외국어교육강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동부의 명문 다트무스(Daetmnuth)대학총장 제임스 프리드맨(James Freedman) 역시 종래 미국 고등교육의 치명적인 결점은 서구문명에 지나치게 치우쳤던데 있었음을 지적하고 이제부터는 여타 문명권의 문화와 언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열거한 몇가지 통계는 다음과 같다. 지난79년 미국고등학교 졸업생들중에서 어느정도의 외국어 실력을 터득한 사람은 5%에 불과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같은 시기에 당시 소련에서는 1,000만명,중국에서는 2억5,00만명이 영어를 공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이 미국의 소비자시장에 그렇게 깊이 침입할수 있었던 것 역시 일본인들의 영어실력 덕분이었다고 덧붙였다. 영어를 모국어로 가진 사람들은 외국어를 잘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영어하나로 거의 모든일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굳이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할 필요나 자극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음을 그들이 이에와서 뒤늦게 깨닫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다른 비영어권의 사정을 보면 그야말로 문자그대로 영어의 횡포앞에서 무기력할 뿐이다. 우리와 유사한 예는 이웃 일본에서 볼수 있다. 동경의 중심부에 있는 대학서림국제어학 아카데미에서는 45개국어를 가르치는데 수강생의 3분의2가 여성이고 이중에서 20~30대의 독신자가 가장 많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많은 수강생 을 가진 외국어는 물론 언제나 영어라고 한다.이외에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몇가지 현상은 우리에게도 참고가 된다. 즉 일본의 리공계대학들은 국어교육과정을 개편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좋은제품을 생산해도 그것이 왜 좋은가를 외국어로 쉽게 설명하지 못하여 국제경쟁에서 낙후될수 있다고 믿기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수한 이공업 출신들이 외국어에 약한 원인을 같이 분석해보니 그들의 국어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일본은 외국어교육뿐 아니라 국어교육 즉 언어교육강화에 열을 올려왔는데 그 효과가 여러 방면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그 한 예는 외국의 문헌, 그 중에서도 문학작품들의 원서와 권황물이 전례없이 많이 팔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즈의 베스트셀러로 110주이상 올라있는 "매디슨군의 다리"의 일어 번역판은 200만부이상 팔렸다. 이것은 미국에서 500만부나 팔렸다는 인기를 감안해도 번역중개회사의 예상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한편 나라에 따라서는 외국어이전에 국어문제로 고민하는 나라도 많다. 싱가포르에는 4개의 공용어가 있다. 남아연방의 신헌법에는 11개의 공용어가 지정되어 있다. 인도의 화폐에는 15개의 공용어를 10종의 문학으로 표기해 놓아서 어느것이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고 한다. 캐나다의 퀘벡주에는 프랑스어가 주요, 영어는 종이어서 간판에는 프랑스어를 위해 크게 쓰고 영어는 작게 써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위 "언어경찰"의 신세를 지게된다. 오늘날 지구는 영어라는 거미줄로 덮여가고 있다. 프랑스어가 안간 힘을 써가면서 저항하고 있으나 그다지 큰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국제화하자고 떠들고 있다. 그러나 국경없는 국제사회에서 의사사통의 1차적 수단은 우선 언어이다. 그런데 이것을 터득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그저 가상하면서도 한편 민망할 따름이다. 해방후 50년간 그렇게도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중 영어로 자기소개 하나도 제대로 못하면서 영상 섹스피어만 좔좔 외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외국어학원은 성장산업이다. 그렇게 많은 투자에 대한 소득이 미미해도 억울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국제사회의 시민으로 선.후진국들의 중간에서 양족 눈치를 고루 살펴야하는 우리에게는 외국어의 필요성은 거의 심명적이다. 그리고 이 외국어습득의 제1보는 정확한 국어능력의 습득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모국어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외국어는 몇가지에 "능통"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국제화의 제1보가 의사소통수단인 외국어의 구사에 있다는 그 외국어 구사능력의 제1보는 국어의 정확한 구사능력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