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한담] 김기형 <초대 과기처장관>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Art is long, life is short)''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Art라는 단어를 예술이라고 현재는 해석하나 원래는 그 뜻이기술기능이었다고 한다. 기술이 가치있음을 의미한다. 요즈음도 많은 사람들이 과학기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달라진다. 협조/협력보다 자기것 챙기기식의 행태가 정부 대학 산업계 등 여러곳에서 적지않다. 27년전 과학기술처 창설에 관여했고 초대장관을 지낸 서정 김기형씨(70)는이에대해 해답을 줄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국제로터리클럽3650지구총재를 맡고 있는 그를 서울 마포에 있는사무실로 찾아갔다. -과학기술분야를 다루면서 평소 한번쯤 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김전장관 =과학기술부장과의 대담에 응낙을 해 놓고 나도 가만히 세월을 꼽아보니 금년이 과학도로 생을 걷게된지 꼭 50년이 됩니다. 나로서도 뜻깊은 자리입니다. -그러면 44년에 대학에 들어가셨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화학분야를 선택한특별한 이유는. 김전장관 =선친께선 법과를 은근히 바라셨던것 같아요. 대학준비를 하는데 하루는 아무말씀안하시며 육법전서를 갖다 주시더군요. 하지만 이과를 택했어요.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 서울 청량리에 붉은 벽돌건물로 지어진 경성제대 예과이과갑류에 들어갔어요. 경쟁이 아주 세 아마 50대1쯤 됐던것같습니다. 그런데 일제가 패망이 가까워 오면서 이과갑류만 제외하고 여타 대학생들을 모두 전쟁지원병으로 끌고 갔습니다. -대학시절부터 과학쪽을 택해 덕을 보신 셈입니다. 김전장관 =그렇습니다. 졸업전에 해방이 됐고 학교가 국립서울대로 바뀌고 희망하는 과를 고르라고 해요. 어느 선배가 나라가 건설되면 일자리가 많아질 것이라고 하면서 공대쪽을 가라고 해 화학공학과를 택했습니다. -미국서 요업공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으셨는데.. 김전장관 =대학을 마치고 한때 대구대학(현재 영남대)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때 국비유학생을 대거 뽑는다기에 지원했습니다. 대학때 은사도 시험생으로 오셨더군요. 영어면접을 잘 치렀습니다. 그래서 펜실베이니아 주립대로 유학했고 그후 뉴욕주에 있는 에리코스피어회사에서 전자요업연구원생활을 했습니다. -고국은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김전장관 =참으로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아마 그 우연한 만남이 나로하여금 미국시민이 되지않고 한국민으로 돌아오게 만든것 같아요. 5.16이후 박정희씨가 대통령이 되고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방미중에 교민들과 자리를 같이 했는데 이때 교민들의 소개를 맡은 현지대사가 나를 열성적인 과학자의 한사람으로 치켜세웠어요. 이것이 박대통령기억에 남은 모양입니다. 나중에 고국으로 부터 대통령이 만나고 싶어한다는 전갈이 대사관을 통해 왔어요. 회사에다 얘기하고 3개월 휴가를 얻어 서울에 왔습니다. -대통령과의 대면이 궁금해 집니다. 김전장관 =그분께서는 경제를 부흥시켜야겠다는 생각을 많이한것 같았어요. 처음부터 숙제를 줍디다. 국내산업및 과학기술조사를 하라고해요. 그러면서 내가 국내실정을 잘 모를테니 자기가 지방출장갈때는 함께 가자고 합디다. 지방 이곳 저곳을 다녀보고,하여튼 1개월쯤 걸려서 보고서를 작성해 냈습니다. 그런데 통 소식이 없어요. 휴가기간은 다 가고 할수없어 비서실로 미국에 돌아갈 날이 다돼 곧 떠나겠다고 전화로 말했지요. 그때 한비사건인지 뭔지 일이 터져 비서실이 매우 바쁜것 같았습니다. 헌데 비서관이 좀 기다리라고 하더니 조금있다가 전화로 내일 당장 청와대로 오라는 겁니다. -그때 과학기술처창설얘기가 오갔나요. 김전장관 =아닙니다. 그날은 이런얘기를 하셨습니다. "행정은 명분이 있어야한다. 경제성도 있어야하고 과학성 또한 결여돼선 안된다. 지금 경제발전이라는 명분은 있다. 경제기획원이 있어서 경제성도 체크할수 있다. 그러나 과학성을 기하기가 어렵다"이렇게 말씀하십디다. 그러면서 미국에 돌아갈 생각말고 경제과학심의회의에서 일하라고 해요. 그날로 상임위원발령이 났습니다. 그때가 66년10월입니다. -"행정에 과학성을 접목시킨다" 멋진 생각 같습니다. 이것을 푸는 일이 그당시 상임위원으로서의 임무였습니까. 김전장관 =그런 셈입니다. 해서 종합과학기술행정체계를 갖추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습니다. 그런데 나로서는 과학은 했지만 고위공직경험이 없어요. 궁리끝에 국가차원에서 과학을 다뤄본 외국의 장관들을 한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대통령에게 출장을 다녀오겠다고 보고하고 미국을 거쳐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인도 일본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미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처같은 행정조직이 없지않습니까. 또 인도는 어떤 이유에서 방문국에 넣었나요. 김전장관 =미국에선 대통령과학기술고문을 만났어요. 이름은 지금 기억이 안나는데 방문목적을 말하니까 그는 내가 몹시 부럽다고 말합디다. 영국은 산업부장관이 있고 또 과기부장관이 있던 시절이고 독일 프랑스등은 선진국이라 찾아갔어요. 인도는 우리나라같이 뒤진나라라는 점으로 찾았던것 같습니다. 일본은 과기청이 있었습니다. -출장후 대통령께 어떤 진언을 하셨나요. 김전장관 =미국의 분업주의,일본의 조성행정에다가 영국것을 가미하는게 좋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경제기획원과 쌍벽을 이룰 과학기술원을 설립해야한다고 생각하고 과학기술원법안을 마련했습니다. 그때 일부에서는 과학기술부로 해야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로하면 종합조정기능이 없게됩니다. 나중에 국무회의에서 과기처로 결론을 냈습니다. -경제기획원과 동급의 과학기술원으로 구상됐다가 과학기술처로 바뀐 것이군요. 과학기술부가 아니고 과학기술처로 된것은 종합조정기능을 살리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그러나 지금 종합조정기능이 제대로 안되는것같습니다. 김전장관 =나도 생각을 같이해요. 과학기술진흥법에 보면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종합과학기술심의회의(종과심)란게 있어요. 국가차원에서 일을 추진할수 있도록한 제도입니다. 그런데 이게 잘안돼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한국에서는 국무총리자리가 불안해요. 과학기술이란 꿈과 높은 전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때그때 단기적인 생각갖고는 안됩니다. -그러면 뭘 고쳐야 합니까. 김전장관 =종과심을 직접 대통령이 챙기는것도 한 방법이고 또 다른 방안으로는 과학기술을 공부하고 제대로 이해하고있는 사람을 대통령이 측근으로 두는 겁니다. -초대장관으로서 과기처가 고쳐야할 점도 한가지쯤 지적해 주시죠. 김전장관 =과학기술행정 연구에 리엔지니어링을 실천해야 합니다. 과학기술교육 인력개발정책을 쇄신해야합니다. 해외에 체류하고있는 한국출신 과학기술자를 어떻게 고국에 기여하도록 할것인가도 연구해야 합니다. -한국의 과학자들 자질이 있습니까. 김전장관 =있다마답니까. 기초과학분야를 기준으로 할때 한국이 국제적으로 27위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평가에서는 전문학술잡지에 게재한 논문수등을 기준으로 하는 SIC( Science Index Citation )라는 측정방법을 씁니다. 이에 구애받을 필요 없습니다. 얼마전 로터리클럽에서 장학금을 마련,해외에 유학보낼 인재들을 면접해 봤는데 참으로 아까운 인재들이 너무나 많았어요. 보세요. 노벨상을 타는 한국인이 멀지않아 꼭 나올겁니다. -한국인이 저력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김전장관 =우리가 갖고있는 능력이나 경험을 이웃하는 개발도상국을 돕는데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 -4월21일은 "과학의 날"입니다. 과기처가 생긴날을 기념해서 이날을 과학의 날로 정한 것으로 압니다. 매년 이날에는 감회가 깊으시겠습니다. 김전장관 =정확하게 말하면 과기처가 생긴날은 67년4월13일 입니다. 초대과기처장관을 임명한 날이 4월13일인데 장관이란 기관을 뜻합니다. 그리고 4월21일은 과기처가 시무식을 가진날입니다. 13일에 임명받고 일주일간 직원임명하고 21일에 시무식을 한겁니다. -아호인 서정을 풀이해 주시죠. 김전장관 =로터리클럽에서 만난 철학하신 분이 지어준겁니다. 중국 고서에 나오는 서설정음이라는 글구에서 땄다고 해요. -건강하십니다. 특별한 관리법이라도 갖고 계신지요. 김전장관 =책을 한권 쓸 계획입니다. 제목은 "장수고"로 하고 부제를 1백살까지 사는 비결로 할까합니다. 글은 1백살까지 살아본후에 쓸겁니다. 지금 일본창조학회회원으로도 있는데 그쪽서 보내오는 자료중에 재미있는것이 많아 모아두고 있습니다. -30년후에 나올 책이지만 지금 미리 한구절만이라도 알려주실수 없습니까. 김전장관 =적게먹고(소식) 차를 마시고(음다) 많이 움직이는게(다동)좋습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