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설악산단풍은 왜 아름다운가..유화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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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총리가 바뀌고 대통령의 경제측근들이 장관이 되고 수석에 올랐다. "보안"을 위한 개각인지 "인선"을 위한 개각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른바 "경제실세"들로 새경제팀이 짜여졌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실세 경제팀의 취임일성은 예나 다를 바 없다. 판에 박은듯 하다. 모두가 "조화와 협력"만을 금과옥조처럼 역설한다. 불도저형이라는 장관도,강성이라는 경제수석도 이구동성이다. 과연 그럴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그럴 경우 역작용 같은 것은 없을까. 돌이켜보면 김영삼정부의 경제팀에선 "인화" 하나만큼은 기가 막힐 정도였다. "독주"니 "견제"니 하는 말은 있었어도 겉으로 드러내 놓고 이견을 보이거나 정책대립을 벌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뒷구멍에서 궁시렁대는 소리는 들렸어도 면전에선 서로간에 "좋은게 좋다"였다. "화의 정신"을 십분 발휘했다. 그게 김영삼정부 경제팀의 "미덕"이었다고나 할까. 장관들이 이렇다보니 관료사회 전체가 그냥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다. 주의.주장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길이 없다. 관료두들겨패기가 극성을 부려도 "날 잡아 잡수"한다. 국가경쟁력이 떨어졌다고 해도 마이동풍이다. 하나같이 실어증환자 같다. 요즘의 경제정책은 의사결정시스템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관이 하고 있는지, 정이 하고 있는지, 관정공동인지 분명치 않다. 정책이 어디서 결정되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민간의 자율과 창의라니까 민이 주도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민영화 민자유치등 "민자돌림"이 많지만 관과 정이 민의 자율을 정말 존중하느냐 하면 그런것도 아니다. 좀 말썽이 날것 같고 시비가 일것 같은 정책결정엔 모두가 꽁무니를 뺀다. 꽁무니를 뺄때는 항상 입에 발린 말이 있다. "컨센서스"다. 국민투표에 부칠 일도 아닌데 툭하면 "국민합의 운운"한다. 합의라는건 물론 좋은 점이 많다. 우선 "국민적 합의"라면 내놓고 대들 사람이 없다. 최종 책임도 피할수 있다. 또 합의란 말처럼 대의명분이 서는 것도 없다. 그러나 경제라는게 합의만으로 굴러가는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늘 양면성이 있다. 때문에 경제에 만장일치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컨센서스나 만장일치만을 고집한 정책들이 중도에서 하차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토지초과이득세법 주택임대차보호법 농안법등이 그랬고 농어촌발전촉진법 농특세등도 벌써부터 그 효과가 의문시되고 있지 않은가. 컨센서스를 명분으로 의사결정이 지연되다보면 정책은 이내 무력화되고 만다. 굳이 경제학의 "합리적 기대가설"을 들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건 약과다. 정부의 스탠스가 엉거주춤 어정쩡할땐 폭력아닌 폭력이 일상화되기 쉽다. 지존파 온보현 소대장길들이기등만이 폭력은 아니다. 이런 것들은 가시적인 폭력이다. 이와는 달리 경제에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폭력이 있다. 이름을 짓자면 "경제폭력"이다. 예컨대 신규산업진출을 위해, 또는 그걸 막기위해 언론플레이를 일삼는 대기업의 행태도 일종의 폭력이라면 폭력이다. 중소기업은 무조건 보호되고 지원돼야 한다며 정부를 을러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근로자 또는 농촌.농민이라는 이름만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다 그런류에 속한다. 얼토당토 않은 일을 가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국정감사장의 국회의원들의 태도도 다를게 없다. 경제폭력은 지존파보다 더 무서울수 있다. 눈에 드러나지 않고, 따라서 사회적인 관심과 비난의 대상에서 비껴나 있어 제때에 손쓰기가 힘들어서이다. 유일하게 대항할 곳이 있다면 게임의 레프리 역할을 하는 정부다. 그런 정부가 컨센서스 타령만하고 있다면 경제폭력은 독버섯처럼 피어나기십상이다. 한마디로 경제팀이 내세우는 "조화와 협력"이 국가경영의 의사결정을 불분명하게 하고, 이는 경제폭력을 부추기고, 경제폭력은 다시 조화와 협력이라는 명분속에 용인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게 새경제팀이 당면한 과제다. 이 과제를 풀기위해선 장관들부터 제목소리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합당한 정책이라면 불협화음을 겁낼 이유가 없다. 맞장구만 치는 "조화속의 균형"보다는 "갈등속의 균형"이 더 값진 것이다. 때가 한창인 설악산의 단풍이 더없이 아름다운 것은 제각각의 색깔이 함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팀 멤버들의 "자기 목소리"를 기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들이 진정 실세라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게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