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칼] (607) 제3부 정한론 : 반기 (31)

등에 때가 잔뜩 낄 정도로 무력봉기를 한 뒤로는 정신없는 생활이었으니,여자도 오래간만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에도는 새벽녘인데도 두차례 거듭 볼일을 보았다. 그리고 늘어져서 다시 잠이 들었는데,해가 거의 중천에 왔을 무렵에야 일어나 간단히 세수를 하고 기쿠가 날라다 주는 아침상을 받았다. "기쿠는 아침을 먹었나?" "예, 벌써 점심때가 다 돼가지 뭐예요" 시중을 들려고 기쿠는 밥상머리에 단정하게 꿇어앉아 있었다. "사이고상은 뭘 하시나?" "산책을 나가셨는데,돌아왔는지 모르겠네요" "여기서 바다가 가까운가?" "별로 멀지 않아요. 산책을 나가시기에 알맞죠" "그럼 식사를 마치고 바다에나 한번 나가 볼까" "그러세요" "기쿠가 안내를 해줘야지" "어머, 그래요? 해드리고 말고요" 기쿠는 기쁜 듯 눈매에 반짝 고운 미소를 떠올린다. 그러고 있는데 하녀가 왔다. 급히 자기 방으로 오라는 사이고의 전갈이었다. 급히 오라니, 무슨 일인가 싶어 에도는 서둘러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사이고의 방으로 갔다. 벳푸 신스케가 와 앉아 있었다. "간밤에 너무 재미를 본거 아니오? 이제 아침을 먹는 걸 보니..." 사이고가 웃으며 말했다. "어젯밤 내가 너무 취했었나봐요. 혹시 실수나 안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실수는 무슨. 허허허..." 웃고나서 사이고는, "벳푸가 급히 말을 달려 찾아왔구려" 하고 벳푸에게 용건을 직접 말하라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벳푸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 에도 도노, 오야마 현령께서 당부가 계셔서 찾아왔습니다. 며칠 전에사가성이 함락되었고, 간부들의 체포령이 전문으로 하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음-" 에도는 안색이 좀 창백해지는 듯했으나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이미 각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밀정들이 에도 도노를 체포하려고 가고시마로 떼를 지어 스며들고있다고 합니다. 속히 딴곳으로 몸을 피하시는게 좋겠다고 오야마 현령께서..." "알았소"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른 다음 사이고가 쩝쩝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쿄로 가도록 하오. 가서 내가 말한대로 탄원서를 제출하는 길밖에..." "일단 도사로 갈까 합니다" 에도의 목소리도 가라앉아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