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탐구] (1) '대운'의 조건..자질에 운따라야 큰손등극

흔히들 금융이 실물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한다. 한국의 금융부문경쟁력은 개국중 위에 불과하다는 평가(스위스국가경영연구원)도 나왔다. 금융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은행산업.그리고 그 산업을 이끄는 은행장-. 그들에겐 이같은 평가를 뒤바꿔야하는 책임이 있다. 과거야 어쨌든 은행산업의 미래가 그들에게 달려있다. 은행장, 과연 그들은 누구인가. 지난2월15일 서울신탁은행4층 이사회회의실. 굳게 잠긴 방안에선 공석중인 은행장추천을 놓고 9명의 추천위원들간에 "쑥덕공론"이 한창이다. 오후3시에 시작한 회의는 오후6시가 넘어도 끝날줄 모른다. 마라톤회의가 끝난 것은 정확히 오후6시24분.문이 열리면서 누군가의 입에서 "손홍균"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금의환향" "재수끝의 영광" "행장추천위가 낳은 이변". 다음날 신문들은 그럴듯한 수식어를 달아 서울신탁은행장의 탄생을 알린다. 얼핏보면 제각각인듯한 수식어다. 그러나 손행장의 행적을 짚어보면 공통적이라는걸 알수 있다. 손행장스토리는 지난 91년5월하순 이광수 당시 서울신탁은행장이 수출입은행장으로 옮겨가면서 은행장자리를 놓고 벌어진 "대권레이스"로부터 시작된다. 레이서는 손홍균수석전무와 김준협차석전무.처음엔 "내부행장배출"이라는 여론을 바탕으로 "수석"인 손전무가 당연히 우위에 선 것처럼 보였다. 이광수행장과의 관계가 별로였던 손전무가 서울법대 동기생인 L의원등의 힘을 빌어 전무자리를 다졌다는 소리도 들리는걸 보면 더욱 그랬다. 그러나 결과는 영 딴판.김전무가 연공서열을 뛰어 넘어 대권고지에 올랐다. 손전무는 "후생가외"를 절감하고 쓸쓸히 보따리를 싸면서 와신상담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뭐가 레이스의 승패를 갈랐을까. 그건 바로 후견인의 파워였다.한창 위세를 떨치던 TK의 K씨를 등에 업은 김전무가 승리를 거머쥐었다는 얘기다. 물론 손전무도 후견인을 내세우지 않은건 아니었다. 금융계의 대부 L씨를 지원세력으로 삼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은행장이 되기위한 "충분조건"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게 없다. 개인의 능력과 자질이 선결조건이다. 그러나 손행장의 인생유전을 보면 은행장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권위주의 정권에선 단연 "줄"과 "연"이 필요조건이었다. 이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던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지난92년 상업은행에서도 그랬다. 이현기 당시행장은 초유의 3연임을 노렸다. 그리고 그의 꿈은 주총전날까지만해도 "완벽"했다. 박태만전무가 도전의사를 내비쳤으나 일찌감치 제압됐다. 또 다른 잠재라이벌인 김추규전무도 "행장바톤을 넘겨줄테니 조용히 있어달라"는 이행장의 주문에 후일을 기약하는듯 했다. 그러나 주총전날 행장은 김전무로 결정났다. "성층권"의 의견조율이 희비를 갈랐던 것이다. 문민정부들어선 줄과 연은 사라졌다. 대신 "운"이 필요조건으로 자리잡았다. 장명선 외환은행장도 다를바 없다. 허준 행장이 한국통신건으로 사임했을때 장행장은 은행장후보에 거론되지도 못했다. 본점근무는 한번도 하지 않은채 92년 상무를 끝으로 캐나다외환은행장으로 한발 물러난 상태였다. 장행장 자신도 "해외근무를 마치면 공항택시기사를 할 생각이었다"고 나중에 고백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5월30일 열린 은행장추천위원회는 그를 압도적 표차로 후보로 선정했다. 물론 "운대"라는건 과거에도 존재했었다. 아무리 힘이 있었더라도 자리가 나지 않으면 행장이 될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명동지점사건으로 졸지에 수석상무에서 은행장으로 수직상승한 정지태상업은행장이나, 지난90년 이병선행장이 단명으로 끝나면서 사령탑에 오른 윤순정한일은행장의 "운이 좋아 자리를 지켜왔고 운이 따라 행장에 올랐다"는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문민정부의 "운대"는 좀 다르다. 사정바람이 없었던들, 자율인사바람이 불지 않았던들, 그리고 은행장추천위원회라는 제도가 없었던들 행장자리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사람이 현 행장중에서도 수두룩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래서 어느 대기업총수의 말마따나 은행장도 "운칠기삼"이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장은 "하늘이 낸 사람"임에 틀림없다. 제도권의 "큰손이"이 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남지방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나오고 나이가 59세이며 은행경력이 30년이상인 사람" 현재 은행장들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14개 시중은행장중 영남과 서울대출신이 각각 8명과 6명이다. 60대가 5명이고 나머지는 50대다. 모두가 30년이상씩 은행밥을 먹었다. 하늘이 냈다는 이런 사람들이 현재 금융산업의 발전을 책임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