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1일자) 차가운 머리로 차분하게 접근을

영국이 낳은 저명한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1842~1924)은 일찍이 경제학도들에게 "차가운 머리와 따스한 가슴"을 주문한바 있다. 그런 경제학도를 한 사람이라도 더 배출하는데 자신의 "빈약한 능력과 한정된 힘"을 바치겠노라고 멀리 1885년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취임 연설에서 다짐한 것으로 뒷날 자주 인용되곤 한다. 최근의 들뜬 분위기를 나무랄수 만은 없다. 엄청난 변화가 올게 분명한데 어찌 팔짱끼고 구경만 하고 있을수 있겠는가. 또 그들은 언젠가 우리와 함께살 동족이 아닌가. 남북경협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동족을 도와야 하는 따스한 심정도 깃들여 있다고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순간 남북경협을 말하고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차가운 머리다. 따스한 가슴은 아니다. 행여 남에게 뒤질까봐,혹은 따돌림을 당하지나 않을까 두려워 허둥대고 경쟁하는 모습은 더욱 아니다. 지난 18일 북.미간에 타결된 북핵관련 협정이 예정대로 오늘 제네바에서 쌍방간에 정식 서명되면 합의의 보다 상세한 내용이 밝혀질 것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합의의 이행전망,그 속에 담긴 함정과 북한의 진정한 의중,남북관계,그중에서도 특히 남북경협의 장래를 좀더 확실하게 알수 있게 될 것이다. 남북경협문제를 둘러싼 최근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경계하면서 우리는 정부와 업계에 다음 몇가지 점에 유의해서 접근할 것을 권하고 싶다. 첫째 남북경협관련 정책을 총괄할 정부기구의 지정 또는 설치가 시급하다. 기획원과 통일원,아니면 상공자원부가 돼야 할지 분명히 해야 한다.지금처럼 중구난방으로 모두가 한마디씩 하는 방식으론 안된다. 둘째 기업들은 나름대로 체계적인 논의와 조율에 나서야 한다. 대기업간 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협력과 질서있는 접근이 긴요하다. 과열과 과당경쟁은 누구에게도 득이 안된다. 셋째 정부와 업계의 긴밀한 협력하에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 경협에는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북은 아직 말이 없다. 우리 혼자 떠든댔자 아무 소용이 없다. 북의 정확한 속셈을 모르는 극도의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어떤 경우에나 대응할 다각적 접근방법을 미리 마련해 두는 것이다. 넷째 정경의 분리가 궁극적으로는 요망되지만 당분간은 어려울 것이다. 경협은 협정이행과 남북대화재개의 추이를 보아가면서 조심스럽게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거듭 강조해야 할 점은 역시 차가운 머리로 차분하게 접근하는 자세이다. 또 말을 아껴야 한다. 일본등의 잇따른 대북 관계개선과 경제접근을 경계할 필요가 없다. 북의 경제건설에는 어차피 우리 힘만으로는 벅찬 엄청난 돈과 긴 세월이 소요될 터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