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금융 농수축협 해부] (2) 취약한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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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물속의 개구리. 환경변화에 적응 못한 사례를 들때 흔히 비유되는 표현이다. 뜨뜻한 물속에서 안주하다가 결국엔 끓어 죽고만다는. 국내 금융기관도 이 비유에 등장하는 단골 손님이다. 수많은 은행들이 일류 컨설팅회사로부터 경영훈수(컨설팅)를 받고있는 현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런데 어쩌면 은행보다 더 뜨거운 물속에서 지내는 금융기관이 바로 농.수.축협이다. 이들이 금융부문에서 체감하고 있는 수온은 "뜨겁다"는 표현으로는 모자랄 정도로 "달아오르고"있는 게 현실이다. 위로는 은행들이 싼 금리와 선진금융서비스로 짓누르고 아래서는 신용금고들이 금고법 개정에 따른 "다채로운 취급상품"으로 치고올라오는 형상이라고나 할까. 이제껏 정책자금과 반관기관이라는 특수성 덕분에 손짚고 헤엄쳐 온 이들로서는 가히 일대 변혁기를 맞은 셈이다. 이들 농수축협이 "어엿한" 금융기관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이유는 이같은 환경변화에만 있지않다. 은행과의 각종 생산성 지표비교에서도 "변신의 당위성"은 드러난다. 우선 맏형인 농협을 보자. 얼마전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농협의 93년도 점포당 순이익은 2천만원. 시중은행 최고인 제일은행(4억8천8백만원)의 꼭 24분의 1이다. 시중은행과의 비교가 너무 "가혹"하다면 특수은행과는 어떨까. 국민은행이 1억5천7백만원,기업은행은 9천2백만원이다. 특수은행 평균은 1억6백만원. 결국 "KO패"엔 변함이 없다. 종사자 1인당순이익도 서열을 바꿔 놓진 못한다. 농협의 1인당순이익은 2백50만원으로 제일은(1천6백90만원) 한일은(1천1백20만원)등 시중은행 평균(8백70만원)의 3분의1 정도에 그치고 있다. 농협의 수신규모가 전금융기관 3위라고 하지만 1인당 예수금(9억1천6백만원) 역시 시중은행 평균(14억9천8백만원)과는 격차가 커 "덩치값"을 못하고 있다. 수협이나 축협은 점포당순이익(각각 2억8천5백만원,1억9천7백만원)이나 1인당순이익(각각 1천1백60만원,1천6백만원)의 면에선 "괜찮은" 수준이지만 1인당예수금(각각 9억9천6백만원,12억8천7백만원)은 시중은행에 못미치고 있다. 게다가 수협과 축협은 무리한 점포신설로 적자점포가 93년말현재 각각 35개와 33개에 달하고있어 "건전"마크를 붙이기엔 무리가 있다. 생산성은 그렇다 쳐도 계량화할 수 없는 부문에서의 경쟁력은 더 떨어진다. 각은행들이 펼치는 "서비스전쟁"에서도 농.수.축협은 수세일변도다. 신상품개발도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때문에 선발기관을 마지못해 뒤따르는 형국이다. 또 요즘같이 모든 금융기관이 국제화 기치를 올리면서 국제금융전문가를 "모셔오고"있는 데 반해 이들은 농협이 올6월 겨우 외환딜링룸을 설치했을 뿐이다. 따라서 외환업무는 유아기에 불과하고 환위험을 회피(헷지)할 파생상품전략을 마련한다는 건 지금상황에선 "언감생심"인 형편이다. 그러나 이같은 비교가 나올때 마다 농수축협은 "은행과 우리와는 설립취지부터가 다르다"고 항변한다. 이들이 내놓는 반박논리는 대개 두갈래다. 하나는 "생산성이 낮은 건당연하다. 은행은 대도시와 대기업을 끼고 장사를 하지만 우리는 농어촌지역을 중심으로 소매금융에 치중하기때문에 "한수아래"인 것은 어쩔수 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농수축협은 조합원을 위한 생산자단체라서 영리위주 영업을 하지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국정감사때 "신용사업부문의 경쟁력이 형편없다"는 국회의원들의 질타에도 이들은 이 "모범답안"을 방패막이로 삼았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면피를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게 연구기관들의 지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축협금융"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고있다. "기업들은 직접금융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비중을 점차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도매금융쪽에서 "파이"가 작아진 은행들은 소매금융에 더욱 치중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협이 지금과 같은 영업행태를 견지한다면 밝은 앞날은 기대하기 힘들다" 물론 이 충고는 축협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농협이나 수협도 이 경구를 비껴갈 여지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