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칼] (631) 제3부 정한론 : 원정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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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금의 요구를 청나라측이 받아들일 턱이 없었다. 그 조건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국 자기네가 잘못됐다는 것을 시인하는 일인 것이다. 대만이라는 자기네 영토를 무단으로 일본군에게 침공당한 것만도 수치스러운 일인데,게다가 배상이라니 말도 되지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 실권자들이 얼굴을 맞대고 앉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리 만무했다. 1차회담이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나자,오쿠보는 오면서 군함안에서 구상했던대로 이번에는 문서로 조리정연하게 일본의 입장을 알리고,질의할 것은 질의를 했으며,구체적으로 요구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회답을 청나라측도 역시 문서로 전달해 왔다. 그처럼 서로의 입장과 주장을 문서로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주고 받은 다음 2차회담을 개최했다. 그러나 두번째 만남에서도 양측은 한발짝도 물러서려고 하질 않았다. 서로 언성이 높아져가고 있을 때였다. 콰쾅! 쿠쿵! 쿵- 별안간 회담장 건물의 유리창이 흔들릴 정도의 포성이 울렸다. 가까운 곳에서 마치 회담장을 향해서 쏟아대는 듯한 대포소리였다. "익크, 이거 어떻게 된 일이야?" "대포를 쏘다니." "아니, 이쪽을 향해서 쏘는것 같은데.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일본측 배석자들은 놀라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수군거렸다. 오쿠보도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그는, "음-" 하고 어금니를 질끈 물며 상대방 대신들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2차회담에는 섭정인 공친왕은 참석을 하지 않았다. 청나라측 대신들과 배석자들도 어떻게 된 영문인가 하고 눈들이 휘둥그래져 바깥으로 시선을 주기도 했다. 쿠쿵! 콰쾅! 쾅. 쿵- 포성은 계속 울려 왔다. 배석한 청국군의 무관 한사람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을 나갔다.잠시후 포성은 멎었고,돌아온 그 무관은 포성에 대하여 해명을 했다. "가까운 곳에 근위군의 포병부대가 있는데, 그 부대에서 포격 연습을 했군요. 여기서 회담이 열리고 있는 줄을 모르고서 말입니다. 연습을 중지시켰으니 이제 안심하시고, 자, 회의를 계속하시지요" 그러나 그것은 변명일 뿐, 실은 그 포성은 고의였다. 시간을 맞추어 회담장을 향해서 공포를 쏘아대도록 미리 지시를 내려놓았던 것이다. 물론 오쿠보 전권대사를 위협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회담이 제대로 계속될 턱이 만무했다. 그렇잖아도 목소리가 높아지려던 판이었는데 말이다. 기분이 상한 오쿠보는 곧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