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논단] 성수대교참사는 천민문화의 소산..박승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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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철도 해운 항공 대형사고, 그리고 흉악범죄와 패륜범죄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 사건은 서로 상관이 없는것 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리사회의 밑바닥에 자리잡은 동일한 병원에서 비롯된 일련의 현상들이다. 따라서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한국적 경제발전의 구조적 유산이라해야 할것이다. 그런만큼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주도해온 우리세대는 이에 책임을통감하고 뉘우침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 근원은 어디 있는가. 경제발전의 역사가 영국은 2백30년, 미국은 1백80년, 그리고 일본은 1백30년에 이른다. 이같은 장시간이 걸리는 일을 우리는 지난 40년동안에 해낸 것이다. 이러한 압축성장에 성공함으로써 우리는 짧은 시간에 절대빈곤으로부터 벗어날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러한 압축성장은 필요한 과정을 생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국민학교에서 대학까지 16년의 과정인데 이것을 4년에 마쳤다면 어떤 방법으로 가능했겠는가.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여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국적 압축성장의 문제점은 크게 두가지로 정리할수 있다. 첫째는 성장이 내생적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생적 힘으로 이루어 졌다는 점이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공업화과정에서 원료 자본 시장등을 모두 국내에 의존했으며 그것을 담당한 것이 농촌이었다. 이런경우 공업발전은 농촌발전과 연계되고 발전의 혜택은 고루 퍼져나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이러한 것들을 모두 수입 외자도입 수출등으로 해외에 의존했다. 다시말하면 이들을 국내에서 마련하는 기간과 단계를 생략한 것이다. 그 결과로 공농간 도농간 지역간 그리고 빈부간의 불균형, 경제정의와 도덕성의 타락, 계층간의 갈등과 소외의식의 심화등을 빚어낸 것이다. 또하나의 문제점은 의식의 낙후성과 이로인한 경제문화의 천민성이다. 물질선진화는 압축이 가능하지만 의식선진화의 압축은 거의 불가능하다. 행동화하는 의식구조는 체험을 통해서만 형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루아침에 떼돈을 번 졸부가 동시에 이에 상응하는 선진적인 의식구조를 가지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물질과 정신의 이중성이 지배하는 사회를 막스 베버는 천민자본주의라고 했다. 이러한 이중성이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는 선진국을 지향하고 있지만 이에 상응하는 시민정신 질서의식 합리적사고는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이와같이 후진적인 의식구조에서 이루어지는 발전과 건설의 가치기준은 시간단축과 원가절감, 즉 "값싼물건을 신속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된다. 추진방법도 "수단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질보다 양, 그리고 내일보다 오늘에 급급하게 될것이니 불실로 귀결되는 것은 뻔한 노릇아닌가. 호주의 시드니에 가면 시를 양분하고 있는 항구위에 10차선의 아름다운 다리가 놓여있다. 이다리는 지금부터 60년전 시드니인구가 30만명이었을 때 1백년뒤 인구가 3백만명이 될때를 생각하고 지었다고 한다. 시드니인구가 3백만명이 된 오늘날에도 이다리는 수송능력이나 안전성에서 아무 문제가 없음은 물론이다. 그나마 공사비는 영국으로부터의 차관으로 충당했다고 하니 이처럼 빚을 지면서도 1백년뒤를 생각하는 정신은 영국인의 선진적 의식구조에서 나온것이다. 성수대교붕괴는 이것을 계획한 정부 설계자 시공자, 그리고 그뒤의 관리자들 모두가 "값싼 물건을 신속하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만들어 내면 된다는 후진적 사고를 한데서 비롯된 합작품이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방식은 현재에도 되풀이 되고 있다. 주택건설을 예로 들어보자. 주차장을 더 만들게 하면 집값이 오르기 때문에 안된다는 사고방식이 오늘의 주차난을 가중시켰다. 선진국에는 2백년 3백년된 집들이 수두록하고 또 그런 집일수록 더 비싸지만 아파트분양가를 통제해 값싼 집만 짓도록 하는 우리나라에서 그러한 집을 지을수 있겠는가. 지난날의 문제는 그런대로 변명의 여지가 있다. 절대빈곤단계에서 할일은 많고 돈은 없고 그러다보니 당장의 문제만 미봉적으로 덮어가자는 후진적 가치관이 어쩔수 없었다고 한다면 그런대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선진화를 지향하는 오늘날에도 과거의 절대빈곤시대, 그리고 농경사회의 후진적 의식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런 점에서 당면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시정책은 정부 기업 국민 모두의 의식과 가치관을 선진화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정책과 제도면에서 필요한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개혁은 량보다 질, 결과보다 과정, 그리고 현재보다 1백년 2백년뒤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 우리경제와 우리사회가 천민적문화에서 하루속히 탈피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할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