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칼] (646) 제3부 정한론 : 강화도앞바다 (11)

스기다는 벌떡 일어서서 운요마루 쪽을 향해 수기신호를 보냈다. 멀리 정박해 있던 운요마루는 곧 항진해 오기 시작했다. 쿠쿵! 쿵! 쿵!.. 포대의 대표는 도주하는 단정을 향해 계속 포효해대고 있었다. 그러나 포탄은 단정에까지 미치질 못하고,바다에 퉁,퉁 떨어져 물기둥을 솟구치게 할 뿐이었다. 단정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운요마루는 다시 정지를 했고,수병들은 잽싸게 배 위로 올랐으며,단정도 끌어올려졌다. 이노우에 함장은 즉각 전장병을 모아 놓고 한바탕 열띤 목소리로 주먹을 흔들어대고 뇌까렸다. "장병 제군! 너희들도 보았듯이 조선군 측에서 우리에게 포격을 가했다. 우리는 식수를 구하러 갔을 뿐인데,물을 나누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대포를 쏘다니. 그런 비인도적인 처사를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다. 이대로 철수한다면 조선군의 대포가 두려워서 도망치는 꼴이니, 우리 일본 해군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된다. 그래서 본관은 지금부터 응징을 감행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제군! 우리 일본제국 해군의 솜씨를 단단히 보여주자. 어떤가?" 와- 야- 하고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그것은 이노우에 함장의 계산된 행위였다. 어디까지나 조선군의 도발에 대한 만부득이한 반격이라는 것을 부하들에게 알려 기정사실화해 두려는 의도인 것이었다. 보좌관인 스기다 소위는 의미있는 미소를 지으며 함장의 표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눈 애기가 있었으니 말이다. "자, 그럼 전원 전투 위치에!" 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장병들은 함성을 지르며 신속히 자기 위치로들 달려갔고, 곧 나팔소리가 울려퍼졌다. 빵빠가 빵빠가 빵- 빠빵 빵- 나팔소리가 함께 마스트에 깃발이 나부껴 올랐다. 해군에서 사용하는,태양광선까지 사방으로 시뻘겋게 그려진 일장기였다.말하자면 국적을 밝히고서 정정당당히 반격을 가한다는 뜻인 모양이었다. "포격 개시!" 작전참모의 호령이 떨어졌다. 쾅! 콰쾅! 쿠쿵! 쿵! 쿵! 콰쾅! 쿠쿵!.. 여러 개의 함포가 맹렬한 기세로 불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잠잠했던 포대 쪽에서도 다시 쿵! 쿵! 하고 응사를 개시하였다. 좁은 해협이 온통 쩌렁쩌렁 울리며 들썩들썩 진동해대는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승부는 오래 걸리지 않았고,결과는 조선군 측의 참패였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