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가격파괴 .. 윤병철 <하나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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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체가 대형화되고 혁신되면서 그동안 유지되어어던 가격체제가 일대 번혁을 겪고 있다. 같은 물건이라도 종래의 백화점이나 도매상의 가격과 새로 생긴 대형양판점 또는 할인점에서의 가격이 한격하게 차이가 나서 소비자를 혼돈스럽게까지 하고 있다. 이와같은 현상은 여태까지의 경제질서가 생산자중심에서 운영되어 왔다면 앞으로는 소비자둥심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후 세계경제는 전쟁피해복구와 대량소비시대를 지나 물질의 풍요속에 이제는 소비가 개성화되고 유행화되어 미덕으로 생각되는 소비자권의 사회로변모하고 있다. 오늘날의 경영환경이 무한경쟁 상태에서 소비자는 개성화된 가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들의 선택이 기업의 존립을 좌우한다. 산업계 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과감한 혁신도 따지고 보면 이와같은 변화에적응하려는 생존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생산자 중심의 사회에서는 가격의 결정이 (제조원가+적정이윤)이라는 도식에 의하여 이뤄진다. 요즘 가격체계의 혼란은 이점에서는 다분히 파괴적이다. 소비자중심의 사회에서 생산자는 이제 고객이 살수 있는 가격으로 물건을 만들수 있느냐를 결정해야 한다. 이 가격수준에서 적정이윤을 발생시키면서 제품을 생산할수 있을 때만 기업이 생존할수 있게 되었다. 가격파괴란 이런 점에서 모든 경영이 소비자만족을 참되게 구현하는 현상이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추진되고 있는 소비자만족경영이 기존의 공급자중심체제에서 고객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이었다면 앞으로 기업은 고객이 바라는 가치를 그들이 만족스럽게 지불하려는 가격으로 생산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가격이란 가치와는 달리 그것을 결정하는 주체의 힘에 의하여 좌우된다. 소비자나 고객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다가오는 사회에서 경영자에게 가격파괴현상에 한발 앞선 내처가 무엇보다 절실히 요청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