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독스경제학] (9) 궁핍화 성장..노택선 <청주대 교수>

60년대와 70년대를 거쳐 수출주도형 성장정책을 추진해 왔던 우리에게 성장은 곧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깔려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어떤 조건아래에서는 성장이 오히려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궁핍화 성장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경제성장은 물건을 생산해 낼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줌으로써 더 많은 소득과 더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데 국제무역이 있는 경우에 성장을 통해 수출하는 물건을 더 많이 생산하고 수출을 늘리면 물건의 국제시장가격이 변해서 오히려 벌어들일수 있는 돈이 줄어들수도 있는 것이다. 즉 수출하는 물건의 값은 싸지고 수입하는 물건의 값은 상대적으로 비싸게될수 있는데 경제학에서는 이를 그 나라의 교역조건이 악화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커피원두를 수출하고 텔레비전을 수입하는 나라에서 획기적인 재배기술의 발달로 커피생산이 크게 늘어나는 경우 국제시장에서 커피수요가이를 뒷받침해 주지 않는한 커피의 초과공급이 발생하고 커피가격은 떨어지게 된다. 이렇게해서 가령 커피 100부대로 텔레비전 1대를 살수 있던 것이 커피 150부대를 주어야 살수있게 되는 경우가 발생했다고 하자. 이때 성장의 효과로 더 생산할수 있는 커피가 40부대 정도라면 성장후에 살수 있는 텔레비전의 수는 줄어들게 되고 이는 그만큼 실질소득이 줄어든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수출재에 치우쳐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 경우 교역조건의 악화로 인한 부정적 효과가 성장에 따른 긍정적 효과를 압도함으로써 성장에도 불구하고 실질소득이 감소하는 것을 궁핍화 성장이라고 한다. 궁핍화 성장이 나타나게 되는 한가지 조건은 그나라가 수출하는 재화가 국제시장에서 가격에 민감하지 않은 수요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낮다는 것은 가격이 큰 폭으로 변해도 수요량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공급이 늘어날 경우 이를 소화하기 위해 큰폭의 가격하락이 요구되고 따라서 교역조건이 심하게 악화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