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굴업도

굴업도는 엊그제까지만 하더라도 실종된 섬의 이름이나 다름 없었다. 정부가 굴업도를 원자력폐기물영구처분장 시설지역으로 선정 발표하기 이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거나 기업을 해주는 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굴업도는 인천 남서쪽 약82 해상에 위치한 덕적군도 8개섬중의 하나다. 기록을 보면 1486년(조선조 성종17)에 충청도 남양부에 속했다가 1885년(고종22)에는 경기도 인천부,1914년에는 부천군,1973년에는 부천군의 폐지로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이 군도는 역사적으로 군사요충지였다. 서기 660년 신라가 중국 당나라에 백제정벌군의 파견을 요청했을때 당의 소정방이 대군을 거느리고와 이 군도에 주둔하게 되자 신라 무열왕의 세자인 법민이 합류하여 연합군을 편성한 다음 백제로 진군했던 곳이다. 조선조때인 17세기중엽에는 이곳에 첨사직의 수군절도사를 파견하여 군영을 설치했는가하면 또 가깝게는 6.25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전진기지 구실을 하기도 했다. 지금 관심의 촛점이 되고있는 굴업도는 경기도옹진군덕적면서포리에 속하는 섬으로서 주섬인 덕적도 남서쪽 13 해상에 자리해 있다. 면적은 1.707 (약52만평),해안선 길이는 12 로 서울 여이도보다 약간 작은 섬이다.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길쭉하게 뻗은 이 섬은 최고봉인 덕물산(122m)를 제외하면 높이 100m이내의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고 해안선은 굴곡이 심하나 해변의 수심이 10m이내로 소형선박의 출입이 용이하다. 섬의 모양이 말을 타고 있는 것 같기로 한가하면 사람이 몸을 구부리고 엎드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하여 굴업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이 섬은 약30%가 모래흙으로 뒤덮여 논이 없고 3,000여평의 밭만이 있을뿐이다. 주민들의 생계는 자연히 양농양환에 의지할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밭에는 보리와 고구마 땅콩을 심고 연안에서 굴과 김을 채취하는게 고작이다. 이 섬에는 한때 60세대에 이르는 주민들이 살았었다. 그러나 질병의 잦은 발생과 어획의 감소로 주민 모두가 덕적도와 인천으로 철수해 버려 무인도가 된 적이 있었다. 6.25이후에 다시 사람들이 이주해 왔으나 82년 16가구 52명,93년 10가구 35명,현재 5가구 10명으로 해마다 주민들이 계속 줄어들어 가까운 장래에 또다시 무인도가 되어버릴 운명에 처해 있다. 어찌됐든 굴업도는 원자력폐기물 영구처분장 건설로 이젠 무인도 신세를 면할수 있는 계기를 찾은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