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새해 경제 설계 : 질경제시대 열려야 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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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안산공단이나 인천의 남동공단, 그리고 남양공단등이 당초에는 서울집중을 분산시킬 목적으로 개발됐지만 결과적으로는 서울집중을 가중시킨 결과가 되었다는 경험을 거울삼을 필요가 있다. 질경제라 함은 경제의 중심이 성장문제에서 국민생활문제로 이행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현대 국민생활은 주택 교통 환경등 도시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의 75%는 시이상의 도시에 살고 있으며 이러한 도시화율은 이미 미국(74%) 일본(78%)등 선진국과 같은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생활환경은 후진국수준에 머물러 있다. 예컨대 우리나라 대도시의 주택 도로 주차시설등은 선진국의 경우 인구도시화율이 40%일때의 수준이며 이때문에 우리국민생활은 "양의 풍요속에 질의 빈곤"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양시대에서 질시대로 바꿔야 할 시급한 과제는 주택정책이다. 그동안 주택정책은 부실한 집이라도 많이 짓는 것이었다. 그래서 낡은 집은 되도록 헐지 못하게 하고 새집은 되도록 값싸게 빨리 많이 짓도록 했다. 아파트분양가통제도 그러한 정책수단의 하나였다. 이것이 부실건설로 귀결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0년전만 해도 절대빈곤이 문제였고 서울의 주택보급률(주택수와 가구수의비율)이 50%수준에 불과했으니 새아파트에 비가 새고 그 수명이 20년을 못넘어도 나름대로 할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시대는 지났다. 새집을 짓는데 소요되는 시간이나 비용은 선진국이 우리보다 훨씬 더 들지만 그렇게 지은 집은 1백년 또는 2백년이 지나도 끄떡 없다. 선진국에는 그렇게 오래된 집일수록 더 비싼 경우가 많다. 서울의 주택보급률도 이제 70%에 이르고 있으며 국민들의 생활욕구도 양에서 질로 이행하고 있다. 바야흐로 주택정책도 선진국형 질중심체제로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주택공급을 시장경쟁에 맡기는 방향으로 나가야한다. 사회정책의 대상이 되는 서민들을 위한 소형공공주택은 정부지원과 통제하에 싼값으로 계속 공급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중산층이상을 위한 일반주택은 분양가규제를 없애고 완전히 시장경쟁에 맡겨야 할것이다. 지금까지의 주택공급에는 정부의 분양가격규제때문에 으레 프리미엄이라는것이 따라붙었다. 이것은 우리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지근거리에 있는 공인된 불로소득의 원천이었으며 주택에 대한 가수요를 유발하고 아파트의 품질부실화를 결과하는 근본원인이었던 것이다. 향후 10년뒤에는 우리의 1인당소득이 2만달러에 접근한다는 점을 감안할때현재 대도시의 단독주택들은 어차피 모두 재개발또는 재건축의 대상이 될수밖에 없다. 따라서 향후 대도시의 주택문제는 신도시건설보다도 재개발과 재건축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점에서 재개발사업이 쉽게 추진될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풀고 특히 재개발아파트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분양가규제를 완전 해제, 이사업을대규모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또 한가지 시급한 도시문제는 교통문제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자동차보유대수는 5년마다 배증하고 있다. 지하철을 파고 도로를 넓혀서 해결할수 없음은 명백하며 대도시 인구집중을 막는일이 최우선임을 앞에서 지적한바 있다. 그런데 현재는 이것을 못하고 있는데다 자동차산업 때문에 자동차를 줄일수도 없고 시민에게 인기가 없는 주차장증명제를 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가히 무책이라 할수밖에 없다. 10부제 운행이나 홀짝수운행도 생각할수 있지만 이러한 정책은 부작용이 너무 크고 장기적으로는 차량보유를 오히려 증가시키는 것이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휘발유세를 대폭 인상해서 소유는 하되 주행은 줄이도록 하고 주차증명제를단행하는 한편 노상주차에는 고율의 도로점용료를 징수하여 주차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주차문제를 해결하는 비결은 모든 주택의 담을 없애는 일이다. 당장 담을 없애는 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노상주차를 강력히 규제하면 시민들은 앞다퉈 담을 헐어 주차장을 만들게 될것이다. 국민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건설질서를 질중심체제로 바로 잡아야 한다. 부실건설은 생활간접자본의 부실, 나아가 국민생활의 부실로 연결되고 있다. 먼저 건설의 가치관과 원가개념을 양에서 질, 그리고 단기개념에서 장기개념으로 고쳐야 한다. 지금까지는 "값싼 물건을 신속하게" 짓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장기적 경제성보다도 당장의 문제만 덮어가면 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형편이 어려운데 먼 훗날 걱정까지 할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제 시간이 걸리고 돈이 더 들더라도 1백년 2백년뒤를 생각하는 건설질서를 세워야 한다. 건설과 사후관리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다. 지금까지는 새로 건설하는 것만 중요하고 사후의 안전관리는 낭비라는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사고가 나지 않으면 지불보험료를 헛돈으로 생각하듯 다리가 무너지기전에 그 다리의 관리에 쏟는 노력은 불필요한 것이라는 후진적 사고가 지배해왔다. 선진국에는 교량의 안전점검만을 전업으로 하는 교량안전관리사라는 전문직종까지 있다고 하지 않는가. 끝으로 건설의 수주및 시공질서를 선진화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수주질서를 보면 정상적인 시장경쟁보다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경유착 담합 덤핑등 불공정풍토가 판을 쳐왔다. 이렇게해서 따낸 공사는 부실업체에 덤핑하청해서 적자요인을 하청업체에 전가하고 결과적으로 하청업체의 부실시공때문에 전체공사가 부실화되는 사례가 많았던 것이다. 이러한 비리의 건설질서를 바로 잡는 개혁이 없다면 부실시공은 앞으로도 계속될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