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재계인사 특징] (4) 전문경영인 시대...무대전면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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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경영인들은 더이상 대역배우가 아니다. 이제는 무대위 스포트 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주연배우가 바로 그들이다" 주요그룹들의 올해 인사는 전문경영인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았다. 전문경영인은 흔히"월급쟁이사장"으로 불린다. 자리를 보장받는 대신 오너의 심부름이나 한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권한은 그리많지 않으면서 오너의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지 옷을 벗어야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주요그룹의 인사는 명실상부한 "전문경영인의 시대"를 연 것으로 과거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문경영인들이 사장대역배우에서 당당한 주연으로 무대의 전면에 선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인사에서 물러난 전문경영인이 거의 없다는 것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기업인으로는 최고의 자리인 회장직까지 차고 올라간 전문경영인 2호도 탄생했다. 화려한 전문경영인전성시대를 예고하는 전조임에 틀림없다. 이번 인사에서 회장이라는 하늘끝까지 올라간 사람은 LG전자의 이헌조회장.이회장은 강진구삼성전자회장에 이어 입사 34년만에 명실상부한 "최고"의 위치에 우뚝 섰다. 이회장은 LG그룹의 주력회사인 LG전자의 회장이면서 그룹차원에서 총력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멀티미디어사업을 총괄할 정도로 확고한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김광호부회장도 지난 인사에서 주목받은 사람중 하나다. 그는 삼성전자부회장으로 승진됐을뿐 아니라 삼성전관 삼성전기등 전자계열사를 총괄하는 전자소그룹장으로 발령됐다. LG그룹의 변규칠부회장도 이번에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올라 회장급 전문경영인단에 합류했다. 전문경영인들이 이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은 각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경영혁신과 무관하지 않다. 경쟁력을 해치는 각종 비효율적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실시되고 있는 경영혁신이 학연과 지연,또는 오너와의 특수관계등이 승진의 중요한 요건이었던 구시대적 인사관리를 용납할리 없다. 대신 "능력=자리"라는 인사기준을 정착시켜 능력있는 전문경영인이 대거 발탁될 수 있는길을 열어주었다. 이번인사에서 그룹의 전문경영인 교육과정을 거친 중역들이 발탁되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LG그룹의 이번 임원승진자중 호남정유 윤봉태상무등 5명이 지난해 최고경영자 육성교육을 이수했다. 선경그룹은 올해 처음으로 임원육성제도(EMD)를 통해 82명의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삼성그룹은 엘리트육성코스로 자리잡은 CEO교육을 받은 임원중 상당수가 승진했다. 부사장승진자중 10명이 CEO교육을 받았다. 이는 능력을 검증받은 중역들이 교육을 거쳐 최고경영자로 부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각그룹들이 최고경영자의 자질을 심어준다는 취지에서 실시한 전문경영인교육과정을 거친 중역들이 승진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능력위주의 인사제도가 착근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능력위주의 인사제도는 전문경영인들의 권한을 강화시킬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에 주요그룹의 계열사 사장들이 자리를 지킨 것도 단기간의 성과에 따라 인사를 하기 보다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충분히 주자는 오너들의 뜻이 담겨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율권을 갖고 소신껏 일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되 결과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뜻이다. 전문경영자의 부상으로 기업임원들의 승진경쟁은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연공서열이나 연을 따져서 윗자리에 오르던 시대는 끝나고 오직 능력만이 자리를 만들어주는 새로운 환경에 접하게 됐기 때문이다. "별"은 하늘만 바라봐서 다는 것이 아니고 "능력"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따내는 것이 됐다는 뜻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