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개혁의 틈새 .. 이계민 <편집부국장>

새해벽두에 부동산실명제의 개혁조치가 발표돼 국정의 주요과제로 등장했다. 김영삼대통령이 지난 6일의 연두기자회견에서 부동산실명제를 곧 단행하겠다고 언급함으로써 그 실시시기와 방법등에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남의 이름을 빌려 부동산을 사는 소위 명의신탁금지를 골간으로 하는 부동산실명제를 자유계약원칙에 위배된다는 법리적 마찰을 빼고는 그다지 반론의 여지나 반대여론도 없는것 같다. 다만 오래된 관행으로 정착돼 왔고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명의신탁의 경우를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방법론상의 과제로 제기될 뿐이다. 그럼에도 부동산실명제실시의 발표가 더욱 큰 관심을 끄는 것은 김대통령취임이후 계속되고 있는 개혁조치중의 하나라는 점에서다. 연초에 터트린 부동산실명제에 이어 비경제부처나 지방자치단체, 공기업연구기관등의 조직개편, 교육개혁등 획기적인 조치들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암시로도 해석되고 있다. 지난 6일의 연두기자회견에서 김대통령은 올해의 6대국정목표로 세계화추진 지방시대개막 국가경쟁력제고 국민생활안정 남북화해와 협력세계화외교추진등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국정과제는 부동산실명제에 밀려 관심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제시된 국정목표가 "늘상 해온 얘기"로 신선도는 떨어지기는 하지만 중요도에 있어서는 분명 부동산실명제보다 우위에 놓여져야 할 것이었다. 그만큼 개혁조치에 관심이 많이 쏠리고 있는 셈이다. 김대통령취임이후 많은 개혁적 조치들이 단행됐다. 대의명분과 방향에서 여론의 지지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개혁은 많은 부문에서 그 틈새를 만들기 마련이다. 틈새가 많아지면 큰 빌딩자체가 위험해진다. 거대한 파도로 변해 밀려오는 물가불안의 파장도 이러한 개혁틈새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물가안정은 5%니 6%니 하는 상승률의 숫자놀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계획적이고 안정된 경제생활을 영위할수 있는 여건조성이라고 느껴진다. 개혁의 틈바구니에서 생겨난 총체적 불안감을 씻고 안정을 되찾으면서 실속을 다지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더구나 올해는 지방자치단체장선거가 예정돼 있어 경제에 또다른 주름살을가져올 가능성을 크다. 여기에서 경제가 정치에 눌리고 정국의 향방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지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지난날의 역사에서 우리는 경제정책이 집권여당의 정치적 선전수단으로 활용되는 예를 많이 보아왔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방편으로 개혁적인 경제조치들이 발표되는 사레들도 있었다. 또 일상적이고 당연한 정책의 변화가 정치적목적에서 개혁조치로 과대포장돼 불필요한 충격과 불안을 가져오는 경우도 많았다. 따지고 보면 "부동산실명제"라는 거대한 이름의 개혁조치는 제도적으로 이미 금지돼 있는 명의신탁의 관행을 점차 없애 나가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방향은 이미 추진되고 있는 것들이 기도하다. 물론 명의신탁금지등이 결코 사소한 일이거나 중요치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정치적개혁조치로 포장돼 불필요한 충격을 가져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의 임기도 이제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고쳐져야 할 제도, 바꿔져야할 관행들이 수없이 많다. 그렇다고 모든것을 한꺼번에 해결할수는 없는 일이다. 금새 시행될 기세였던 부동산실명제가 정상적인 입법과정과 여론수련등을 충분히 거쳐 내년에 시행될 것이라고 얘기들이 나오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위 개혁적 조치들의 조급함을 탈피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같기 때문이다. 개혁은 하나의 바람몰이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질적인 고도화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 과제들이 중심이 돼야 한다. 발전의 원동력의 "창조적 파괴"는 파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에 오는 새로운 질서의 형성으로 국민생활의 안정과 수준향상이 이뤄지는데 있다. 국정지표의 하나인 세계화의 과제도 밖으로 세를 과시하는 외연적 목표보다는 내적모순과 갈등을 극복하고 안정된 국민행활정착의 토양을 마련하는데 있다. 개혁의 틈새를 메꾸는 내실화에서 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