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새해 경제 설계 : 김윤환 <고려대 명예교수>

새해가 되면서 국내외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WTO출범에 따른 세계경제의 무한경쟁과 세계질서의 변화, 이에 대응한 우리의 정책적 과제나 제도의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쟁시대에는 선의의 경쟁을 할수 있는 힘센자만이 살아남을수있기때문에 모든 면에서 공정과 공존에 어긋나지 않는 방향에서 국제경쟁력을 기르는 것이 우리의 나아갈 번영된 길이 될 것이다. 역사적 교훈에 비추어 보면 공업화형성기에는 자본설비등 물적자원의부족이 성장의 애로가 되어 노동문제가 소홀히 다루어졌다. 그러나 공업화의 발전.성숙기에는 인재, 기술 정보, 조직정신등 인적요소가 핵심이 되는 인적자원부족이 경제성장의 애로가 된다. 따라서 중진국에서 21세기에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우리로서는 국제인재,경영인재,기술자,현장인력등의 인적자원을 소중히 여기고 활력있는 인재양성과 근로의욕 앙양,그리고 노사관계,민주화에 의한 인력활용을 하지않고서는 세계화도 경제선진화도 어려울 것이다. 요컨대 경제선진화는 노동선진화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간 한국자본주의는 정부주도하의 대기업그룹의 비대화와 선진국화의 꿈을 지향하는 성격을 띠고있는 반면 근로자와 국민의 어려운 노동과 생활이란 어두운 면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근로자와 국민의 생활과 권리를 지킬것을 기본으로 하고 대기업그룹의 치부위주의 무분별한 기업경영과 경제관료화로 독주하는 정부의 경제운용을 민주적으로 규제하여 사회본위 국민본위의 경제민주화를 꾀하여 국민에게 정신적 안정감과 물질적 부유함을 실감케하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해야 한다. 따라서 국정운용의 지표가 되고 있는 세계화가 전자의 경우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 세계화 지방화 정보화 남북문제 정부조직개편 정계재편의 움직임에 가리워져 노동문제는 노사협력정착이란 말잔치속에 실종되고 있다. 새해 1월1일자 신문의 거의 전부가 세계화와 남북경협을 크게 제기하면서도 노동문제는 다루고 있지 않다. 경제선진화 노동후진국화정책으로는 2000년대에 복지국가지향의 선진국진입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므로 세계화 방향에 걸맞는 노동문제해결의 길을 모색해야할 것이다. 첫째 노동생산성향상에 의한 국제경쟁력강화는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노동환경개선등 분배공정화와 근로자의 의사반영을 최대화하는 참여와 양립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국제노동기구,또는 선진국의 공정노동기준에 비추어 국제수준의 노동기준에 걸맞는 노동법개정과 제도개선으로 민주적노동운동과 민주적노사관계정착의 길을 열어야 한다. 셋째 세계적추세에따라 외국인 노동자와 해외투자기업의 현지노동자에게도 국제관례나 국제노동기준에 배치되지 않는 방향에서 대우를 소홀히 하지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여야 할것이다. 이상과같은 입장에 서서 노동의 입장과 기업의 입장을 살리는 방향에서 근로자와 국민의 참여에 입각한 정치민주화 경제성숙화,이를 바탕으로한 평화통일의 기반조성으로 복지사회실현의 미래를 열어야 할것이다. 어쨌든 노동문제의 객관적인식과 국제감각을 담은 의식개혁으로 노동통제를 일삼는 정부,천민적이윤추구에 여념이 없는 기업,비현실주의적인노동운동계가 노동관의 위기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올해를 경제선진화를 위한 노동선진화의 원년으로 삼을수 없다. 95년 주요경제시책추진방향중 노동분야를 보면 인력양성체제를 산업수요에 부응하여 개편하고 노사안정분위기를 적극 조성해 나갈 것이라고했다. 김영삼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도 올해 우리경제는 성장률을 7%선에서 안정시키는 대신 물가상승률을 5%수준으로 낮추는 안정성장기조를 꾀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성장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사간 협력관계정착이 우선적 요건이라고 하였다. 지난 30년간(1963~93) 경제활동인구는 8백23만명에서 1천9백80만명으로 늘었고 경제규모확대에 따라 실업률은 8.1%에서 2.8%로 하락하였다. 산업고도화를 반영하여 전문.사무직과 판매.서비스직의 비중이 높아졌고 농림어업직의 비중은 낮아졌다. 전체실업자와 저학력실업자는 줄고 3D기피현상과 중소기업의 노동력부족으로 외국인노동자가 흘러들어오는 가운데 고학력실업자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황에 비추어 고용정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그리고 산업고도화가 요구하는 인력수요에 양.질적으로 대응하는 방향에서 인력개발이 이루어져야한다. 인력의 양보다 질적수준미달이 크게 문제되어 교육개혁 직업훈련의 재검토가 시급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내놓은 "주요경쟁국의 근로행태비교"보고서는 높은 임금인상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근로의욕저하에 따른 것으로 경쟁력약화의 주요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노동의 질개선을 위해서는 미시적으로 적정인사관리가 필요하고 거시적으로는 올바른 인력정책과 더불어 임금 물가 노사관계의 안정이 필요한 것이다. 관계당국이나 경제계가 노.사.정단합이 세계화를 성공시키는 관건이라고 내세우지만 올해의 노사관계가 불안할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12월말 50대그룹 노사관계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95년 노사관계전망"을 조사한결과 94년에 비해 95년 노사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54%가 다소 혼란해질 것, 10%가 매우 혼란해질것으로 보아 64%가 노사관계가 불안해질것으로 보고 있다. 나머지 36%가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다소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노사관계의 불안요인은 제2노총설립추진에 따른 노조분쟁,지자체장선거에 따른 사회분위기이완,경기호황에 따른 임금인상요구증대,노동법개정이 될 것으로 보고있다. 무엇보다도 노사관계의 불안요인으로는 노동계가 몇년만의 호황국면을 맞아 제몫찾기를 위한 성과배분과 물가불안을 감안한 임금보전을 위한 임금인상요구를 꼽지않을수 없다. 노총.경총 임금합의가 어려운 올해에는 높은 경제성장,제2노총설립을 둘러싼 노동단체간의 선명성경쟁,지방자치단체장선거로 인한 공권력약화등으로 노사관계가 악화되어 고율의 임금인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큰것으로 일부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올해 물가도 6월에 실시될 지방선거,임금불안과 부동산등 실물투기,세계경기호조에 의한 원자재가격오름세,본격적인 외환자유화등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다. 올해의 경우 대기업노조등 약50만명의 조합원이 가맹한 민주노총건설준비위 (민주노총준)가 봄부터 시작될 임금및 단체협상에 모든 조직력을 동원하기로 결의하고 특히 6월로 예정된 지자체선거전에 임금.단체협상을 모두 마무리할 것을 검토하고 있어 상반기가 노사관계를 좌우할 시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자동차 조선등 업종별노조와 현총련,대노협등 그룹별노조들의 연대투쟁여부가 노사관계를 좌우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지난해 11월에 임금가이드라인철폐,퇴직금환원,노동3권완전보장등의 관철을 목표로 출범한 공공부문노동조합대표자회의(공노대)의 등장이 노동운동의 판도와 노사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것으로 헤아려진다. 한국노총도 재야노동계가 단위노조에 대한 노총탈퇴활동을 가속화시킴에 따라 재야노동계의 비난을 받아왔던 노총과 경총간 중앙단위의 임금합의에 따른 임금가이드라인설정을 포기하고 강도 높은 임.단협투쟁을 검토하면서 선명성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리하여 임금협상시부터 파란이 일어날것으로 예상되며 노동계에 대한 주도권장악을 위한 노조분쟁이 일어나면서 이것을 해소 하려는 정부개입과 맞물려 의외의 사태를 유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6.29선언후 많은 분규를 거치면서 노사당사자들이 얻은 경험의 축적과 성숙된 의식,그리고 노사안정이 시급하다는 사회적공감대가 형성되어 올해의 노사관계도 어렵기는 하지만 안정기조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최근 많은 근로자들이 투쟁중심의 노동운동보다는 노사협력의 분위기를 선호하고 있어 노사관계의 불안요인이 그대로 표출되기는 어려울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노동부와 관련부처들은 WTO출범에 따른 무역정책에 적극 대처한다는 판단에 따라 각종 노동관계법과 제도를 대폭 정비한다는 방침을 세운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노사문제가 사회불안이라는 차원에서의 정치논리나 수출을 위한 경쟁력강화라는 경제논리만으로 해결하려는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으로해결하고자하는 근로자들은 세계화의 명분아래 노동자를 희생시키고 노동의 제도나 기준이 신재벌정책이 될것이라고 반발할것이다. 따라서 효율.공정.참가를 이념으로 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종합정책적입장에서 합리적인 노동문제해결에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이리하여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집단이기주의에 대해서는 엄정대처한다는 방침의 강권적노동통제방식의 노사관계정책기조를 우려하는 바이다. 오늘과 같은 지구촌경제화시대에는 노동문제를 국내뿐아니라 국제적시각에서도 인식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94년 마라케시회의에서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올해 WTO발족에 따라 ILO와의 협력하에 노동조건을 무역에 연계시키는 블루라운드(BR)움직임이 가시화 될것이므로 이에대한 대책도 세워야 할것이다. 특히 우리는 ILO협약 제87호의 결사의 자유및 제98호의 단체교섭권조항에 관한한 우리의 현행법체계로서는 감당할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노조법 제3조 단서 5항에의한 복수노조설립금지가 어용성시비를 불러일으켜 ILO가 이것을 시정하도록 우리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2년이상의 노동관련법개정연구위원회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이고도 공평한 법제도의 개혁이 정치상황에 밀려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최근 중소기업의 노동력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불법 또는 합법으로 많은 외국노동자들이 국내에 유입하였고 이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매우 열악하여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외국인노동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의 대외위신이 손상될뿐아니라 여러가지 사회문제를 파생시킬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에대한 신중한 대책이 필요하다. 최근 통상산업부가 외국인근로자에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산재의료보험가입도 허용한다고 하는데 매우 다행한 일이다. 그리고 저임을 노린 해외진출 기업들은 현지의 임금상승에 따른 경영악화를 사전에 고려하면서 현지노사관계대책을 면밀히 세워야 한다. 예컨대 중국의 노동조합전국조직인 중화전국총공회는 95년부터 노동법이 시행됨에따라 외자기업에서의 노조활동을 강화키로 했고 정부는 노동법을위반하는 모든 기업주들에게 무거운 벌금을 부과하는것을 골자로 한 강력한 새노동법시행령을 제정했다. 따라서 해외진출기업은 현지의 관습 문화 제도 법을 잘살피지 않고서는 합리적인 기업경영을 할수 없을것이다. 따라서 기업의 경영정책은 두말할것도 없고 정부의 노동정책도 이러한 국제적 시야에서 폭넓게 입안실시되어야 한다. 우리는 노동선진화의 원년에 서서 세계화를 구상하고 전략을 세우면서 그에 걸맞는 정책과제를 제기하고 이를 해결해나가야 한국경제의 선진화가 실현될것이다. 우선 세계화에따라 노동시장에서도 국경의 구분없이 경쟁압력이 점차 가중될 것이므로 이에 대처한 노동생산성 제고에 의한 경쟁력 강화가 요구된다. 그러기위해서는 지적숙련이 높은 인재를 양성보유하고 그들의 창의성을 근로의욕앙양에 의해 발휘토록해야 한다. 나아가 그러한 인재들의 적극적활용을 위한 국제적시야에 입각한 합리적 노사관계의 확립이 필요하다. 그리고 불확실한 노동시장의 수급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할수 있도록 제도나 법을 정리해두어야 할것이다. 또한 정보화,노동인력의 고령화 여성화에 따른 취업 근로형태의 다양화에 대처할수 있도록 하는 고용계약의 자유화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고 나아가 해외현지인력이나 국내외국인 인력의 효율적 관리가 요구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