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칼] (695) 제3부 정한론 : 대내전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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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열도에서 가장 남쪽인 아열대지방에 가까운 가고시마에 눈이 내리는 일은 극히 드물었는데, 함박꽃잎 같은 눈송이가 휘날리기 시작하자, 행진하던 군사들은 모두 하늘을 우러러 보며 서설이라고 좋아했다. 사인교의 뒤를 말을 타고 따르던 본대의 대장인 이케가미가 사이고를 향해 말했다. "난슈 도노,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뭐? 눈이 내린다구요?" 사이고는 사인교의 창구멍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오- 함박눈이 휘날리는군" "정말 희한한 일입니다. 좀처럼 드문 눈이 더구나 2월 중순인데 내리다니.틀림없이 좋은 징조이지요" "글쎄, 흠-" "승리는 우리 것입니다. 난슈 도노" "하늘에 달린 일이 아니겠소" 휘날리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는 사이고의 얼굴에 흐뭇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사이고 군단은 히가시메와 니시메 두 가도로 진군해 갔는데, 일차 목표는 구마모토 진대의 공략이었다. 그곳을 점령하면 규슈는 일단 손아귀 속에 들어오는 셈이니, 다음은 히로시마 진대로 향하면 되는 것이었다. 작전계획이 그렇게 세워져 있었다. 사인교에 건들건들 흔들리며 구마모토를 향해 가고 있는 사이고는 어쩌면 그곳에서는 전투가 벌어지지 않고 일이 끝나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곳 진대 사령부,즉 구마모토성에는 자기를 숭배하는 가바야마 스케노리가 참모장으로 있었고,또 가고시마 사족 출신의 장병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이 자기가 군사를 거느리고 상경하는 도중에 구마모토에 들렀다는 것을 알면 환영하여 성문을 열고 합류해올지도 모른다 싶었던 것이다. 벳푸 신스케가 이끄는 선봉부대가 구마모토성에서 4킬로가량 떨어진 가와시리라는 곳에 도착한 것은 20일이었다. 그러니까 가고시마를 출발한지 엿새만이었다. 이튿날과 그 다음날 전부대가 속속 그곳에 당도하여 진을 쳤다. 오쿠보가 가고시마의 반란을 안 것은 사이고가 가고시마를 떠나던 2월17일이었다. 구마모토현의 지사인 도미오카 마사아키로 부터 전신으로 보고가 들어왔던 것이다. 그때 오쿠보는 교토에 가 있었다. 메이지천황이 선황인 고메이천황의 10주기 제례를 위해 도쿄를 떠나 교토로 갔기 때문에 정부의 수뇌들이 대부분 동행했던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