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수재산처리 아직 공개안돼 의혹..'재산몰수'무효 처리과정

.80년 신군부에 의해 재산을 몰수당한 권력형부정축재자들중엔 정치인 경제관료등이 망라돼 있다. 당시 "10.26"과 "12.12사태"에 이어 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확대하면서 대권을 장악한 전두환소장등 신군부세력은 그날밤 김종필당시 공화당 총재를 비롯,이후락씨 이세호씨 김진만씨등 구정권의 주요인사들을 연행했다. 이들이 연행된지 한달만인 6월18일 계엄사는 김종필씨를 비롯한 9명의 "권력형부정축재자"가 모두 8백53억1천1백53억원에 이르는 부정축재를 해온것으로 수사전모를 발표했다. 계엄사는 이들이 부정축재과정에서 조세범처벌법 외환관리법등 각종 범법 행위를 저질렀으나 "일체의 공직에서 물러나 부정축재재산을 국가와 사회에 자진 헌납하겠다고 밝혀 형사처벌은 유보한다"고 밝혔다. 구정치인에 대한 부정축재조사는 이후로도 계속됐다. 이어 7월19일 김현옥씨 길전식씨 정해영씨등 전직고위각료와 여야정치인 17명이 연행됐다. 이들도 모두 3백여억원을 축재했고 이중 70억원을 국가에 헌납키로 했다고 계엄사는 발표했다. 축재내역은 김종필 2백16억원 이후락 1백94억원 이세호 1백11억원 김진만 1백3억원 김종락 92억원 박종규 77억원 이병희 24억원 오원철 21억원 장동운 11억원으로 각각 발표됐다. 또 김용태씨형제 1백50억원 정해영 77억원 구태회 21억원 고흥문 20억원 박영록 19억원 최형우 1억원등이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김계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등 박정희 대통령시해 관련자들도 재산헌납의사를 밝혀 1백23억원의 재산이 환수됐다. .당시 환수된 재산의 처리결과는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80년 환수된 "부정축재재산"을 신군부세력이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한 의혹은 꾸준히 제기됐으나 정부는 이를 완전히 공개하지 않았다. 6공화국때인 90년 당시 평민당은 "환수재산중 3백97억원이 증발됐다"며정부에 규명을 요구했다. 이에대해 감사원은 7백36억원의 환수재산중 21억원이 누락된 사실을 시인했다. 이중 4억원은 누락원인을 밝혔으나 나머지 17억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 지난 93년에는 김종필 민자당대표가 80년 5.17때 빼앗긴 고가미술품이 신군부요인들의 "사물"이 됐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김대표는 "대원군의 란병풍, 김옥균의 글씨, 이당 김은호 화백의 사군자등의 고가미술품을 압수당했다"며 "당시 그사람들(신군부를 지칭)이 나한테 뺏은 미술품을 자기들끼리 나누어 가졌다"고 말했다. 특히 난병풍은 누가 가지고 있는지도 안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회부의장을 지낸 김진만씨는 미술품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금반지 목걸이등 조그마한 패물과 부인이 운영하는 유치원 및 자신의 골프채까지 모두 1백50여점을 압수당했는데 석방될때 "한가지만 돌려주겠다"는 수사관의 얘기에 "골프채나 돌려달라"과 한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이른바 "부정축재재산"의 헌납자들이 재산반환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은 6공때인 지난 88년. 그해 12월 정해영전 국회부의장과 그의 아들인 정재문의원(당시 신민당의원)은 8억9천7백만원의 재산반환청구소송을 냈다. 정씨 부자는 당시 소장에서 "80년 당시 36일간의 불법감금속에서 헌납에 응하지 않자 부자를 마주보게 하고 구타하는등 생명에 위협을 느낀 상태로 강요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재규전 중앙정보부장의 동생 김항규씨가 89년 3월 김재규씨의 재산몰수때 자신의 재산 17억6천만원이 함께 몰수당했다고 소송을 냈다. 김재규씨의 미망인 김영희씨도 경북선산과 경기화성의 임야와 대지 7만2천평을 되돌려 달라는 소유권등기이전말소청구소송을 냈다. 또 김계원씨도 89년 10월 경기도 과천시 소재의 땅 1만3천평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90년 8월에는 전국회부의장인 김진만씨가 임야 46만여평, 주식 24만여주등에대한 반환청구소송을 내는등 5공시절의 재산몰수 또는 헌납에 대한 소송이 계속 줄을 이었다. .신군부측에 "재산몰수"를 당한 정치인들은 대체적으로 이번 판결결과를 "당연한 일"로 반기면서도 법적대응 여부에 대해서는 판정이 확정되는 대로제소하겠다는 반응과 추이를 지켜보면서 결정하겠다는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있다. 신민당부총재를 지낸 고흥문전의원은 이날 "나는 당시 신군부의 강요가 있었지만 화해조서에 도장도 찍어 주지 않았다"면서 "정치를 시작하기 훨씬전부터 갖고 있던 성동금속주식중 절반(신군부발표로는 20억상당)을 그들이 부정축재재산으로 몰아 강제로 뺏어갔다"고 회고했다. 고전의원은 "얼마전 박영록전의원이 송원영 김수한전의원등과 함께 소송을제기하자고 했으나 솔직히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면서 "법적 대응은 시간을두고 생각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송전의원은 그러나 "확정판결이 나오는대로 당연히 제소해서 빼앗긴 재산을다시 찾겠다"고 적극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송전의원은 "당시 재산을 몰수당한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낯모르는 변호사들이 대신 도장을 찍은채로 박전의원 경우처럼 화해각서 작성을 강요당했다"고 분개하면서 "5공과 6공시절 정해영 김진만전의원이 이번과 유사한 소송을 제기했으나 모두 졌다"고 밝혔다. 송전의원은 "지난해 10월 류준상 신기하의원을 제안자로한 야당의원 1백여명이 80년 당시의 국회의원 불법체포와 재산몰수가 무효임을 의결하는 내용의 결의안 채택을 제의해 놓았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회차원에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박해충전의원은 기자로부터 소식을 전해듣고는 "내용을 알아보고 곧바로 소송을 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전의원은 "화해조서에 내가 도장을 안찍고 버티니까 집사람에게 압력을 가해 도장을 찍게한것 같다"면서 "당시 집사람 명의로 돼있던 노원구 월계동소재 임야 9천여평중 5천평을 뺏아갔다"고 설명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