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칼] (697) 제3부 정한론 : 대내전 (32)

메이지 천황은 사이고가 반기를 들고 일어나 군사를 거느리고서 도쿄를 목표로 가고시마를 떠나 구마모토를 향해 진군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고 슬픔에 잠겼다. 다시 내전으로 치닫는 나라의 형세가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그것보다도 사이고에 대한 친애감 때문이었다. 메이지 천황은 막부를 타도하고 왕정복고를 이룩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많은 신하들 가운데서 사이고를 누구보다도 신뢰하고 있었다. 그가 유신 단행의 중심인물이어서 그렇기도 했지만,그릇이 크고 정이 많은 그의 사람됨을 높이 샀던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일본의 앞날을 그가 주역이 되어 이끌어 나가주기를 바랐었는데,불행히도 정변으로 도중하차를 해서 낙향하더니 결국은 자기가 만든거나 다름이 없는 유신정부에 대하여 반기를 들고 일어서다니. 생각할수록 착잡하고,가슴 아프고,슬프기까지 하였다. 그의 봉기를 신하들끼리의 권력투쟁이라는 측면으로 이해할 수도 있었지만,그러나 정부에 대한 도전은 곧 천황인 자기 자신에 대한 반역이 아니고 무엇인가. 천황에게 충성을 다한 일등공신이 역적으로 전락하고 말다니,될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메이지 천황은 그것을 막아보려고 마음먹었다. 황족인 아리스가와노미야(유서천궁)를 불렀다. "짐(짐)이 사이고의 일을 생각하면 밤으로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오.부디 귀공이 가서 사이고를 만나 설득을 해주오.이 나라가 다시 내전을 치른다는 것은 크나큰 불행이며 유신의 일등공신인 사이고가 짐에게 반기를 들어 역적의 오명을 쓰게 되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오.아무쪼록 일이 원만히 가라앉도록 진력해 주기 바라오" "폐하,심려 마옵소서.소신이 가서 사이고를 만나 폐하의 깊으신 뜻을 전하여 일이 원만히 되도록 있는 힘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소.짐은 귀공만 믿겠소" "황공하옵니다. 폐하" 아리스가와노미야는 깊이 머리를 숙여 절하고 어전을 물러나왔다. 물러가는 아리스가와노미야의 뒷모습을 메이지 천황은 근심과 기대가 뒤섞인 그런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메이지 연호로 10년이니,열다섯살에 즉위를 한 메이지 천황은 어느덧 스물다섯살의 제법 의젓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칙명을 받아 사이고를 만나러 가려던 아리스가와노미야는 출발해 보지도 못하고 일이 어긋나 버렸다. 구마모토 진대에서 반군이 공격을 개시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던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