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논단] 금융의 가격파괴와 안전장치 .. 안승철

안승철 슈퍼마켓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격파괴"현상이 은행들의 금융상품에까지 밀려오고 있다. 최근 일부 은행들이 일정시한내에 적금을 가입하는 예금자들에게는 매달내는 적금납입금을 깎아주고 있다든가 고객예금을 유치하기 위하여 예금액이많을수록 높은 금리를 적용하고 있는 경우들이 그 예이다. 금리자유화가 진전되면서 금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예금금리를 높여나가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앞으로 이러한 수신금리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타금융기관까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신면에서는 직접금융 능력을 갖춘 대기업체들의 은행, 단자회사 이탈현상이 지속되면서 중견.중소기업들과 일반개인들에 대한 금융기관들간의 대출경쟁때문에 대출세일도 일어나게 될것이다. 금리자유화의 위력이 점차 가시화 되어가는 증거이다. 그동안 낮은 예금금리때문에 은행을 외면하고 또한 은행의 높은 대출문턱에눈을 흘겨온 일반국민들에게는 "가격파괴"라는 표현에 걸맞는 커다란 변화라아니할수 없다. 그런데 금융기관들의 이러한 가격파괴현상이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으며 그것의 영향과 그에대한 안전장치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은행경영자나 금융당국은 심각하게 점검해 보아야할 때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금리규제때문에 영업활동에 있어서 제약도 많았으나 한편으로는 두터운 예대금리마진이 보장되어 있어서 높은 인건비 물건비를 부담하고서도 일정수준의 영업이익을 실현할수 있었다. 은행들은 종전에 대체로 3~4%의 예대금리차를 누려 왔으나 금리자유화가 부분적으로 시행되고서부터 이 마진폭은 이미 2% 수준으로 내려와 있다. 3단계 금리자유화가 완료되면 1%대 수준으로 더 내려가게 될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의 은행결산수치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보도되는 바에 의하면 높은 영업이익을 실현한 선두 시중은행들의 경우에도 연중 주가상승에 기인한 유가증권 투자이익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은행 영업이익 구성의 불안정성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유가증권투자가 미미한 지방은행들의 경우 결산결과는 그전에 비하여 계속 하강하는 추세가 아닐까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금융시장은 제1,2금융권에 걸쳐서 금융기관수와 점포수가 경제규모 인구 소득수준기준으로 보아 선진외국들에 비하여 과다하여 구조적으로 과잉경쟁 상태에 놓여 있다. 그리고 직원수는 상대적으로 많아 1인당 생산성은 낮으면서 인건비는 계속상승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막대한 전산시설투자가 계속 늘어 금융기관들의 영업이익의 무거운 압박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과잉규제를 받던 때에는 어느 한 금융기관이라도 탈락되지 않도록 과보호를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금융규제가 풀려 금융기관간 자유경쟁이 벌어지는 판에서는 우승열패의 원리에 따라 일부 한계 금융기관들의 탈락과 도산도 불가피하게 된다. 금융기관의 경우 수지악화가 지속되고 적자가 시현되면 예금자들의 선인도가 떨어져 경미한 돌출사고나 루머에 의하여도 예금인출러쉬현상을 폭발할 수가 있다. 대형은행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어느 지방에서의 소규모 신용금고에서 조차 동시다발적인 예금인출사태가 벌어지면 당해 금융기관 예금자들의 피해에 그치지 않고 연쇄적인 파급영향때문에 전체금융시스템의 불안으로 연결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은행예금자들에 대한 보험제도가 도입되어 있지 않다. 또 보험제도가 실시되고 있는 상호신용금고들의 경우에도 부실 신용금고가 막상 도산되면 결국은 타금융기관에 인수시키는 방법으로 불을 꺼왔다. 금융자율화시대에는 이러한 타율적인 해결방식이 더 통용되기 어려운데다가흡수기관의 자기체력 한계때문에 사실상 기대하기 힘들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금융풍토에 비추어 보아 엄청난 진통을 각오하지 않고는선뜻 합병흡수에 나설 은행이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금융제도와 유사한 일본의 경우에도 금융자유화이후 도산한 군소 금융기관을 대형 도시은행들에 인수시키는 행정편법을 사용하여 오다가최근 거품경제 붕괴이후 금융기관들의 체력을 전반적으로 약해지면서 사정이달라지게 되었다. 더욱이 도산직전의 두개 신용조합을 구출하기 위하여 결국은 중앙은행의 발권력에 의해 설립되는 신설은행에 파산금융기관을 흡수인수시기는 방법까지 동원하고 있음을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금융기관의 도산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전적인 예방책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금융규제 완화에 의한 금융자유화의 진행에는 금융감독의 강화를 통한 금융절도의 확립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보다 먼저 금융자유화를 겪은 선진국들의 경험과 교훈이다. 금융기관들의 무모한 계수경쟁과 팽창경영을 억제하고 금융기관들의 체력보강을 유도하기 위하여 자기자본비율의 지도, 충당금적립.대손상각의 강화, 경영내용의 공시등이 강조되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에 더하여 방만한 경영을 막을수 있는 책임경영제도가 확립되어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최근 신문보도에 의하면 어느 지방은행의 행장이 경영책임을 지고 물러났는데 그 사유가 취임때 노조에 약속한 이익목표가 증권투자 부진때문에 실현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금융시스템의 안정과 관련하여 대단히 유감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은행의 이익목표 달성여부가 증권투자여하에 의존할 정도로 초조하였던 은행경영이 유감스러우며 주주가 아닌 노조에 은행장의 진퇴가 달려있다는 점이 더욱 유감스러운 것이다. 경영책임의 확립과 경영권의 안정은 금융기관의 건전경영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은행도 상법상에 규정된 주식회사이기 때문에 경영자에 대한 감시와 평가는당연히 주주대표들에 의하여 행하여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일찍부터 은행의 주주 특히 대기업 주주들은 은행들 사금고화시키는 가상의 무법자로 간주되어 이들을 가급적 은행경영 언저리에서 멀리 떼어 두었기 때문에 주인이 있으면서도 주인이 없는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에 따라 주인아닌 사람들이 주인행세를 하여온 셈이다. 그런데 금융기관의 공공성 유지와 관련하여 현행 금융감독 체제하에서도 대주주들의 사금고화 시도를 막을수 있는 여러장치들이 있고 필요하다면 그 장치를 더욱 강화할수가 있다. 또 복수 대주주들의 상호견제에 의하여 주주권 남용을 제어하는 방법도 있다. 예컨대 선진외국에서 운용하고 있는 주주이사회제도를 도입하여 복수 대주주들로 하여금 상호견제하면서 은행경영을 감시케 한다면 주인있는 은행이 되어 책임경영이 이루어지면서 경영권의 안정도 실현할수 있을 것으로 본다. 금융의 자유화, 개방화 진전에 따라 우리나라의 금융기관은 일찍 경험하여보지 못한 대전환기에 놓여 있다. 앞으로도 가격파괴와 같은 현상들이 계속 일어나고 더욱 확산될 것으로 이에 대처하여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유지를 위한 안전장치가 심각하게 강구되어져야 할때가 았다고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