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이사람] 마셜 스미스 <러닝 스미스사 회장>

미교육용 완구업체인 "러닝스미스"의 마셜 스미스회장. 두차례에 걸친 실패를 딛고 일어선 이전삼기의 오뚝이 기업인이다. 스미스회장이 자기사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61년. 증권분석가로 7년동안 모은 3만달러로 대학가인 보스턴지역에 "페이퍼백북스미스"라는 체인서점을 냈다. 일종의 모험이었다. 그때만해도 보급판서적(페이퍼백북)이 별로 팔리지 않던 시대였기 때문. 그는 그러나 가볍고 가격이 싼 보급판이 젊은이들을 끌것이라고 판단,일을 추진했다. "마음껏 읽다 가셔도 좋습니다"라는 푯말을 내걸었다. 답답한 책방이 아니라 카페식의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밤늦게까지 문을 열어 쉼터를 제공했다. "페이퍼백북스미스"는 보스턴의 명물로 떠올랐다.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불과 10여년만에 체인수가 75개로 늘어났다. 문제는 경영이었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가득찬 스미스회장이지만 "사업"에는 약했다. 가맹점수의 확대에만 몰두하다 어음을 못막아 결국 도산하고 말았다. 수년간 절망에 허덕이던 그는 81년 "비디오스미스"로 재기의 출사표를 던졌다. 보스턴 최초의 비디오대여점이었다. 역시 그다운 아이디어 사업. 외롭고 즐길 돈은 별로 없는 타지학생들이 많은 대학촌이 주요시장이었다. 그의 이런 구상은 적중, 가맹점수가 점점 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스미스회장에게 경영은 너무나 힘겨웠다. 고객을 즐겁게 해주는데는 천재였지만 돈을 모으지는 못했다. 가맹점수가 늘어날수록 수익성은 점점 떨어져갔다. 관리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미련없이 팔았다. 두번째 실패였다. 이대로 물러설수는 없었다. 비디오점의 매각을 계획할때 이미 스미스회장의 머리속은 또 다른 사업에 대한 구상으로 꽉 차있었다. 새로운 개념의 교육용 장난감을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놀이와 공부는 병행할수 없다는 기존통념을 바꿔 놓겠다는 야심이었다. 부모들이 환영하는 장난감, 동시에 어린이들도 즐겁게하는 완구, 이것이 스미스회장이 꿈꾸는 세번째 사업이었다. "러닝스미스"라는 이름으로 91년 새출발을 했다. 실패는 이미 두번으로 족하다고 마음을 다졌다. 스미스회장은 이전의 참패가 취약한 경영때문임을 너무도 잘 알았다. 전문경영인을 동반자로 맞아들이기로 했다. 자신은 경영에서 일절 손을 떼기로 했다. 그의 번득이는 아이디어는 이제 훨훨 날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 셈이었다. "러닝스미스"는 미완구업계에 회오리 바람을 몰고 왔다. 설립 2년만인 93년 매출이 1천6백만달러를 기록하는등 탄탄대로를 달렸다. 체인수도 16개로 늘어났다. 그는 "러닝스미스"가 번창하는 이유로 언어 컴퓨터등 분야별로 장난감을 개발한 것을 든다. 아울러 디자인부터 제조 진열에 이르기까지 구매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려는 노력도 한몫했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그가 꼽는 성공의 으뜸요인은 자기사업을 전문경영인에게 완전히 일임한 용기다. 자신의 단점을 인정했을때 비로소 성공의 문턱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