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0일자) 고금리질곡에서 벗어나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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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적인 고금리는 정부주도 개발연대의 망령이다. 정부주도를 마감하기 위해 기획원을 해체했고 무한경쟁 세계대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재정경제원을 탄생시켰다. 고금리탈출은 통화당국의 경제세계화 지원능력의 시험대이다. 정부주도 시대에는 고금리시대를 살아갈 방법이 있었다. 저축유도를 위해 국내금리는 높게 잡았지만 값싼 해외 차입자금으로 수출.성장 기업에 투자지원을 했고 원화가치를 떨어뜨려서라도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을 유지시켰다. 물가는 높았어도 성장속도가 빨라 실질소득은 증가했다. 정부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시장개입과 가격왜곡까지도 정당화되었고 국민과 기업은 혹독한 규제를 참아냈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민간의 시장적응능력이 높아지면서,더구나 국제시장의 변화에 국내시장이 점점 노출되면서 이제는 더이상 정부의 행정력으로 시장을 통제관리할수는 없게 되었다. 민간의 경쟁력으로 시장의 거대한 힘을 이겨내야할 시점에 서 있다. 높은 국내외 금리차는 국가 경쟁력강화의 최대 걸림돌이다. 경쟁상대국보다 두세배가 넘는 국내 고금리로는 기업의 경쟁력은 침몰할 수밖에 없으며 금융산업의 피폐화를 피할 수 없다. 지금 한국경제는 고금리의 질곡속에서 중병을 앓고 있다. 금융개방의 압력이 드세지고,투기성 국제금융의 공략에 통화당국이 정신을 못차리고,불법적인 급전 대출광고가 늘고,생산자금이 재테크 머니게임에 열을 올리고,이 모두가 따지고 보면 고금리 때문이다. 정부주도 개발연대의 만성적 자금고갈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고금리가 개방경제 체제하에서 어떻게 한국경제의 경쟁력을 좀먹고 있는지를 통화당국이 바로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금리는 경제의 눈을 멀게 한다. 내일을 위한 투자보다는 오늘 당장의 소비에서 더 큰 만족을 얻기 때문이다. 고금리는 산업의 피를 멎게 한다. 부도를 막고 지준을 때우는데 급하다보니 투자는 밀리고 기술개발은 아예 생각도 못하고 사람에 대한 투자는 못들은 것으로 접어두게 된다. 고금리는 자산보유자의 불로소득을 조장한다. 돈 갈증에 허덕이는 기업인들을 눈멀게 하는 투기성 머니게임이 경제질서를 무너뜨리고 상거래의 도덕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고금리의 지속은 국민경제를 서서히 고사시킨다. 불확실성이 높고 위험도가 큰 투자가 줄어 새로운 창업과 고용창출이 사라져 경제의 생명력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고금리속에서도 기업이 살 수 있다는 것은 개발연대의 환상이다. 제 값을 낼 수 있는 상업기업은 마음껏 쓸 수 있는 돈이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