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새지평을 열자] (4) 노조도 전문성 갖춰야

"공장 땅값 상승분이 회사자산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은 노조의 임.단협 단골메뉴입니다. 회장 주머니에 들어갔다는 유언비어도 자주 유포되지요.요건미비로 아직 자산재평가를 실시하지 못해 그렇다고 설명해도 믿으려들지 않아요"(창원 H사 K이사) "장부상에 기록될 뿐인 "퇴직적립금"이 어느 은행 어느 구좌에 입금되고 있는지 당장 보여달라는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매년 되풀이합니다"(온산 P사 노무당당 K씨) 일선 노무담당자를 만나면 쉽게 들을 수 있는 노조의 대표적 "약점"들이다. 이들은 노조가 회계 및 경영지표를 너무 몰라 임.단협 때마다 "쓸데없는" 소모전을 벌이는 일이 잦다고 입을 모은다. 인천 S사 관리담당자는 회계장부를 보여줘도 "사측이 고의로 복잡한 통계를 내놓아 회사경영정보를 은폐하고 있다"고 집행부가 주장하는 바람에 할수없이 "좀 더 쉬운"자료를 만드느라 애을 먹고있다고 하소연 했다. 이러다보니 노조가 임단협 관련사항이 아닌 "어려운" 문제는 사측에 상당부분 의존하는 것도 관행화되버렸다. H사 C부장은 "80년대엔 이념에 치우치긴 했지만 노조의 주장이 논리정연했으나 요즘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만 한다"며 공부하지 않는 노조를 꼬집었다. 현대자동차노조 홍성봉정책연구부장은 "의욕을 갖고 조합원들을 위해 일해본 결과 노조활동도 고도의 전문성과 관리경험이 필요하다는 점을 느끼게됐다"고 털어놓았다. 노동연구원이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도 "노조집행부가 경영이론을 잘 알고 있다"는 설문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은 사측 노측 각각 23%와 25.8%에 머물러 회사경영에 대한 노조의 이해력제고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바 있다. 노동관계학자들은 사측과 대등한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노조가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구태를 벗어나야한다고 강조한다. "똑똑한"노조라야 회사측을 상대로 설득력있는 제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지적도 덧붙인다. 이들은 회계 경영지표에 대한 이해,경영환경변화에 대한 안목,각종 관리능력등을 전문성으로 꼽고있다. 각종 성과급제 시행등 제도의 변화도 노조의 전문성 제고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92년부터 경상이익과 연계해 경영성과급을 주고 있기 때문에 노조가 재무재표에 아주 밝아졌다"(한국중공업 김종세이사)는 평가도 나오기 시작하고있다. 구미 1공단 코람프라스틱.이 회사 노조집행부는 지난해 회사측이 건네준 93년 경영성과자료를 보고 흑자액 7억원에 의심이 갔다. 산정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노조집행부는 외부 공인회계사에게 경영분석을 의뢰,실제 흑자액이 31억원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집행부의 한 관계자는 "이 결과를 회사측에 엄중 항의해 창립이후 처음으로 성과급을 받아낼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울산 현대자동차노조는 기업경영형과 관료행정형을 혼합,체계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조직으로 유명하다. 이회사 노조는 지난해 임협에서 최근 수년간의 임단협결과를 분석,"그룹 타계열사에 앞서 선도적으로 임협에 나설 경우 결국 손해만 본다"는 결론을 내고 임협을 타계열사들의 임협이 끝나는 8월말로 잡았다. 자체 조사원들의 치밀한 시장조사를 바탕으로 전노협모델 기준보다 낮고 소비자물가 상승률(5.8%)보다 약간 높은 "설득력있는" 생계비모델을 마련했다. 그 결과 지난해 임협에서 분규를 겪은 타계열사나 동종업계 보다 훨씬 많은 과실을 따냈다. 노동연구원 김태기박사는 "제조업 노동조합은 관리경험이 적은 생산기능직 사원위주로 운용돼 대안제시를 통한 노사간의 문제해결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사측에 설득력있는 요구를 하기위해 조합이 필요로하는 자료수집이나 분석,회사 경영자료의 분석능력을 높이기 위한 각종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그는 덧붙였다. "노경관계"라는 협력적 노사관계의 전형을 이룩한 LG전자(금성사)도 수년간에 걸친 교육에 힘입어 이같은 성과를 이뤄냈다. 이 회사는 지난 89년 일체감조성단계로부터 시작 "자기성찰" "품질혁신"교육을 끝냈다. 최근에는 "국제적 안목배양"으로 교육수준이 높아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근로자를 포함한 사원교육에 대한 우리 기업의 예산은 태부족인 상태다. 노사협력센터가 2천4백여 상장.등록기업등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93년 1개기업당 평균 광고선전비는 9억2천3백만원인데 비해 평균교육훈련비는 2억원으로 4분의 1에 불과하다. 사측도 "능력있는 파트너"양성에 관심을 기울여야할 때이다. 노동교육원 지원교육부 김종옥부장은 지난해말 H사노조로 부터 노조원교육의뢰를 받고 "이 회사의 장래는 아주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사측이 아닌 노측이 직접 교육을 의뢰하는 것은 흔치 않는 일이다. 더욱 눈낄을 끈 것은 그들이 보내온 "강사참고사항". 그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 조합원들은 이기주의가 팽배해있고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부족하다. 임금수준은 대한민국 최상이다. 앞으로 임금보다 후생복지쪽으로 조합활동의 중점을 선회할 계획이다. 노사가 생존하려면 경쟁력을 강화해야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