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태수와 종도 .. 김덕환 <쌍용그룹 사장>

요즘 어깨에 힘을 준채 고개를 푹 숙이는 새로운 인사법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이라고 한다. TV드라마 모래시계에 나왔던 "어깨"들의 인사법을 흉내내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미화했다는 한가지 비난만은 면하기 어려울것 같다. 실제로 청소년들중에 조직폭력배를 선망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솔직히 필자도 이 드라마에 나오는 폭력배들의 절대복종과 의리에 묘한 매력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어떤 강력계 검사는 이 드라마에 나타난 조직폭력의 세계가 다 옛날 애기라고 한다. 요즘 폭력배중에는 태수같이 멋진 폭력배는 없고 종도같이 흉악하고 비열한 범죄자들만 우글거린다는 것이다. 폭력세계를 움직이는건 의리가 아니라 돈이라는 것이다. 어디 폭력세계만 그렇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장이 된다. 그리고 장에게는 책임과 권한이 함께 주어진다. 장은 그 책임과 권한을 적절히 조화시켜 지도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래서 조직에서의 장의 자리는 화려해 보이기는 해도 고달프고 외로운 순간이 많다. 장은 부하보다 더 많이 일해야 하고,더 많이 알아야하고,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게다가 소인배들의 달콤한 아부를 분별할줄도 알아야 하고 때때로 고독한 결단을 내려야 하고 부하들을 공정하게 통솔해야 한다. 조직의 성패는 오로지 장의 지도력에 달려있다 하겠다. 이것이 장들의 고민 거리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높은 자리로 오르기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때로는 정도를 벗어난 비열한 방법으로 상대방에게 흠집을 내면서까지.. 장의 자리에 오르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자리가 더이상 자신의 역량에 걸맞지 않다거나 자신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되면 훌훌 털고 떠날줄도 알아야 한다. 후계자 육성에 게으르거나 물러날때를 잊어버리면 주변 사람들이나 조직에게 불행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필자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선한 조직이든 악한 조직이든 지도력의 본질은 결국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봤다. 그것은 바로 "솔선수범"이다. 중세의 귀족 기사들은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나가 목숨을 바쳐 싸웠다. 태수도 그랬다. 그러니 존경을 받을수 밖에.. 김덕환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