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마시며] '아버지 김기진과...' 펴낸 김복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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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올해로 10주기가 됩니다. 아버지는 항상 자신의 인생이 실패작이라고 얘기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실패도 많이 하셨지만많은 것을 이루었다면서 위로했죠" 국내 프롤레타리아문학의 선구자 팔봉 김기진선생의 진실된 내면세계를 딸의 입장에서 그린 "아버지 팔봉 김기진과 나의 신앙"을 펴낸 김복희씨(67.성악가)는 아버지의 삶은 걷잡을 수 없던 역사의 탁류속에서 힘겹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고 얘기했다. "아버지께서는 살아계실때 친일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에 대해 힘들어하셨습니다. 인생은 재시험을 칠수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입버릇처럼 되뇌였죠. 만년에는 붓글씨로 ''짧은 일생을 영원한 조국에''라는 표어와 격려문을 써서 손자손녀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김씨의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자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엄한 전형적인 한국아버지의 모습. "네살때 길을 잃은 적이 있어요. 어떤 할머니집에 있었는데 문이 열리면서허겁지겁 뛰어들어오는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늘씬하고 후리후리한 키로 성큼성큼 다가오시던 그때의 모습이 아버지에 대한 인상으로 굳어지게 됐습니다" 김씨는 3남1녀의 외동딸로 유난히도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얘기한다. 자신이 성악공부를 한 것도 아버지덕택이라고. "아버지는 음악에 각별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머니가 성악을 했지만 나래를 펴지 못했지요. 그래서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성악에 소질이 있어 보이는 나에게 성악공부를 시켰지요" 그덕택으로 50년 한국초연 오페라 "카르멘"으로 데뷔하는등 화려한 음악인의 생활을 보냈다고 말한다. 이책에는 특히 청전화백 토월회멤버 최승희및 박정희 전대통령등 팔봉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인상도 담겨 있다. "박대통령은 아버지와 각별했지요. 직접 가족들과 함께 우리집을 방문하기도 하셨습니다. 특별한 용무없이 오랫동안 계시다가곤 했습니다" 김씨는 일본도쿄에서 공부할때 토월회사진이 아직 남아 있다고 전한다. 어릴때 생각에도 보통사진과는 판이하게 다른 그사진이 너무도 흥미롭고 재미있었다고 전한다. 김씨는 이화여대음대 성악과및 미국 줄리아드음악학교를 나왔다. 이대음대조교및 강사로 20년간 근무했으며 저서로 여류음악인 11인에세이집"비엔나 숲속의 이야기"등을 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