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계량화할수 없는 '효제'..김시형 <산업은행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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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아시아의 네마리 용으로 불렸던 나라 가운데 한나라의 어떤 정치지도자가 "효도법"을 제정,불효한 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하여,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중요 뉴스로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 때의 보도에 따르면 청소년의 폐륜적인 범죄와 버림받은 노인문제 등인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우리나라야말로 바로 그러한 법을 제정,시행해야 한다는 여론도 없지 않았다. 만약 어떤 사회가 어버이를 잘 섬겨야 할 도리인 효도라는 윤리강목을 법으로 강제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면,그 사회는 분명히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사회에서 어떤 문제이건 법에 호소한다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거나 최종적인 선택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날 이른바 정보화사회의 표상인 컴퓨터시대를 살아가면서,그 첨단문명이 주는 혜택과 고통을 동시에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계량화한다고 해도 인간의 정의와 사랑만은 수치로 나타낼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어버이의 자식에 대한 사랑,즉 어버이의 은혜는 하늘과 땅에 비유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나타낼 말이 없으며,부모 형제에 대한 효제른 윤리가치는 아무리 발달된 컴퓨터라 할 지라도 그 참된 내용을 숫자나 그래프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효제란 값을 매길수 없는 인류의 문화유산처럼,다가오는 미래 사회에서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담보할 수 있는 지고의 가치를 지닌 마지막 덕목이 될 지도 모른다. 매사를 쉽게 살아갈려는 풍조,순서를 당장에 뛰어넘으려는 성급함,자기중심의 쾌락주의적 경향 등에 익숙해 있는 이 땅의 젊은 세대들에게는,복고적인 유교 윤리가 아닌 생활속의 기본원리로서의 효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작은 실천이 아쉽다고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