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11) 제1부 운우의 정 (11)

그 이튿날부터 보옥과 가경은 서로 깊은 사랑을 느끼며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주고 받는 말들도 얼마나 따뜻하고 부드럽고 다정한지. 하루는 둘이 손을 잡고 들판으로 놀러 나갔다. 어느 지점에 이르니 주위가 가시나무로 가득 덮여 있고 이리와 호랑이들이 무리지어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색 물이 굽이치는 넓은 강이 떡하니 앞을 가로막았다. 강 위에는 다리도 없어 건너갈 수가 없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홀연히 경환 선녀가 저 뒤쪽에서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경환 선녀가 보옥을 향해 외쳐대고 있었다. "앞으로 나가면 안돼요! 속히 되돌아와요" 보옥은 황급히 멈춰서며 물었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여기는 미진(미진)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사람을 혼미케 하는 나루터란 뜻이지요. 물의 깊이가 만 장(장)이요,그 넓이는 천리나 되어 보통 배로는 건널 수가 없지요. 단지 목거사(목거사)가 키를 잡고 회시자(회시자)가 삿대질을 하는 뗏목만이 건널 수가 있지요. 그런데 그들은 돈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사양하며 건네주지 않고 인연이 닿은 사람들만 건네주지요. 당신은 그런 것도 모르고 여기까지 놀러 왔는데,만약 지금 거기서 떨어져 물에 빠진다면 내가 여태껏 당신에게 경계하며 신신당부한 모든 말들도 물속 깊이 함께 가라앉고 말지요" 경환 선녀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미진나루터 물속에서 뇌성같은 소리가 나더니 야차 귀신들과 물귀신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 보옥을 물속으로 끌어넣으려 하였다. 혼비백산한 보옥이 식은땀을 비오듯 흘리며 고함을 질러댔다. "가경아,가경아! 나를 좀 살려다오!" 이 고함은 보옥이 현실로 돌아와 진씨 방에서 외친 소리였다. 보옥의 비명을 듣고 놀란 습인과 다른 시녀들이 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와 보옥을 다독거렸다. "보옥 도련님,우리가 여기 있으니 안심하세요. 무서운 꿈을 꾼 모양이죠?" 바로 그때 가용의 아내 진씨가 방 바깥에서 시녀들에게 고양이나 개를 잘 단속하여 시끄럽지 않게 하라고 지시를 내리고 있었는데,보옥이 잠꼬대를 하며 외쳐 부르는 사람 이름을 듣고 의아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가경이라는 이름은 다름이 아니라 진씨의 어릴적 이름이었던 것이다. "이상도 해라.이 집안에서는 아무도 내 어릴적 이름을 알지 못하는데 보옥 아저씨는 어떻게 알고 꿈속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일까. 그것도 비명을 지르듯이 저리 외쳐 부르는 것일까"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