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시론] 사시제도와 법학교육 .. 박춘호 <고려대 교수>

1954년5월 당시 미국의 연방대법원 판사인 펠릭스 프랭크퍼터( Felix Frankfurter )는 버지니아주에 사는 한 소년으로부터 한장의 간단한 편지를 받았다. 사연인즉 법률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면 되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그의 답의 요지는 그후에 법률가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즉 정말 유능한 법률가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소양을 먼저 충분히 갖춰야 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처음부터 서둘러 법기술적인 준비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프랭크퍼터 판사의 답변요지를 항목별로 열거하자면,첫째 영어로서 표현능력을 충분히 갖추어 정확한 의사표시를 할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 문학과 예술의 감상능력도 교양인으로서 수준에 알맞는 정도로 길러야하며,셋째 이리하여 균형있는 정서적 발달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나라 법학교육의 현황을 보면 대학입시준비 위주의 고교교육과정을 거쳐 대학에 들어오면 1년간의 교양과목을 형식적으로 얄팍하게 이수한 다음에 바로 법학의 전문분야에 들어간다. 이것은 법리론을 소화할수 있는 준비가 거의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암기위주의 추상적이론을 외우는것에 지나지 않는다. 위 아래 이제 겨우 돋은 두어개의 이빨로 암소갈비를 뜯는 격이다. 이와같은 현실이 법학을 가르치는 쪽이나 배우는 쪽 모두,나아가 사회전체에서 나타나고있다. 그것은 이러한 제도의 해독을 인식못해서가 아니라 사법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는 무조건적인 강박감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다시말하면 모든 법과대학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하나의 공인고시학원에 불과한 현실이다. 요즈음 항간에서는 사시제도뿐 아니라 법조계 전반에 관한 개혁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예를들면 법조인의 숫적 다과를 외국과 비교하여 논하는데 사회적 배경이나 제도적 차이점을 무시하고 수치만을 직선상으로 비교하는 것만으로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것은 법학교육계와 법조계의 이해관계대립으로 인한 논의는 아무리 계속해도 끝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법학교육 본연의 취지나 목적에 의거하여 몇가지 기본적인 점을 논하고자 한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순수한 법학교육은 불가능하고 단지 법기술자 양성의 하나의 수단으로서만이 법학교육이 존재할 따름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제까지는 이와같은 상황이 용납되고 유지될수 있었으나 이제 고도로 국제화된 현실앞에서는 이같은 현상은 법조계자체의 건전한 발전에도 백해무익할 따름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흔히 예로드는 일본의 경우를 보자.일본 사법성의 어느 조사보고에 의하면 일본의 사법시험 합격자들의 평균 연령이 29세,그리고 응시횟수가 평균 6회라는 수치가 나와있다. 그래서 일본의 우수한 대학생들이 굳이 법조계에 진출하려는 의욕을 점차 상실하게 되어 마침내 우수한 인재확보에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본이 사시제도개혁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이것이 하나의 동기가 되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제도적 측면외에 법학교육의 본질을 살펴보자.4년간의 학부재학중 1학년의 교양과목과정이 끝나면 바로 사시준비에 착수하는 학생이 대부분인데,그중에서도 비교적 우수한 학생들일수록 이와같은 전철을 밟는 경향이 농후하다. 따라서 대학생으로서의 소양에 있어서는 "법과대학생들이 제일 무식하다"는 핀잔이 태연히 회자된다. 그것도 그럴수밖에 없는 이유가 법과대학재학중에는 문학 역사 예술등 법학외의 교양과목에 관한 독서를 하는 학생이 거의 없다. 물론 외국어에 있어서도 제일 뒤떨어져 있는것이 현실이다. 세계는 바야흐로 국경없는 1일생활권으로 축소되었다. 여기에 필요한것 중에서 가장 긴요한 것은 국제교류에 있어서 의사소통의 1차적 수단인 외국어를 들 수 있다. 우리가 외국의 법제도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무식하여 크게 망신을 당한 예는 UR교섭과정에서 여지없이 나타났다. 다시말하면 외국어 구사능력의 부족으로 국제경제법에 관한 기본적인 틀을 파악하지 못했었고,나아가 교섭과정에 있어서 교섭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파악하거나 우리의 입장을 충분하게 해명하는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외국어문제에 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중요성이나 필요성의 기준으로 보면 제1외국어로서의 영어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법제도의 기간을 이루고있는 대륙법계의 이해는 독일어와 프랑스어가 긴요한 위치에 있으며,우리의 경우에는 일본어 역시 무시할수 없다. 그러나 이제 영어가 국제어로 등장한 이상 이 여러 다른 외국어들의 기초를 아무리 잘 갖추어도 영어의 뒷받침이 없이는 이것들을 활용할 계기가 마련되기 힘들다. 법학교육제도내지 사시제도의 개혁은 대수술이나 용단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은 서로 대립되어 있는 이해관계에 있어서 어느 측면만이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는 식으로 이루어질수는 없고,상호간의 양보와 타협으로만이 가능한 일이다. 아무쪼록 현재의 제도가 합리화되어 법대 졸업생이 "반숙인간"이 되는 제도는 바뀌어야 한다. 또 10여차례의 시험에서 고배를 마시고 있는 불행한 법학도의 측은한 모습도 사라질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눈부시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법학교육만이 골동품으로 남을수는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