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한담] 지철근 <조명전기설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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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조명업계가 시장개방이후 밀려들어오는 외국 선진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구책 마련에 발벗고 나섰다. 국내조명산업은 시장규모가 4천억~5천억원에 이르고 있으나 자본이나기술면에서 아직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있어 국내시장이 이들 외국기업에의해 빠른 속도로 잠식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따라 조명업계는 자본.기술제휴.부품계열화.분업생산체제구축 등지금까지 외면해오던 대기업과의 협력방안을 적극 모색하는 등 안간힘을쏟고있다.=================================================================== 후진양성과 조명산업 발전에 일생을 바친 지철근박사(69.조명전기설비학회장)를 서울 강남에 있는 학회사무실로 찾아가 변화를 시도하고있는 조명업계 현황에 대해 들어봤다. 지박사(공학)는 서울대공대와 미미네소타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교수로 재직해오다 정년퇴직,지금은 서울대 명예교수와 호서대에 출강하고있다. 지박사는 최근출간된 "조명원론"을 비롯 16권의 전기.조명관련 저서와 1백여편의 논문을 발표하는등 이 분야의 제1인자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지박사 =정년퇴직후 더 바빠졌습니다. 1주일에 두어번 호서대에 나가 강의를 하고있습니다. 강의가 없는 날에는 학회 사무실에 나와 전문서적도 읽고 업계 자문에도 응하고있지요. 요즘은 "원적외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대한 연구논문을 쓰느라고 더욱 바쁩니다. 결혼 주례부탁도 쏟아져 들어와 시간을 쪼개 써야 할 정도예요. -매우 건강해 보이십니다. 건강유지의 비법이라도 있습니까. 지박사 =비법이라고 할 것까지야 있겠습니까마는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일에 묻혀 잡념없이 지내는 것도 건강유지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젊었을 때는 집사람과 여행도 자주 다녔습니다. 전국 방방곡곡 안가본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년사이에는 할일이 너무 많아서 여행 떠날 엄두도 내지 못하지요. 7~8년 전부터 골프를 시작해 1주일에 한번정도 골프장에도 나갑니다. -애주가로 소문나있더군요.주량은.. 지박사 =기분이 좋을 때는 소주 두병은 마십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한병정도면 족하지요. -평생을 후학양성과 조명산업 발전에 기여해 오셨는데 조명학을 전공하게 된 특별한 동기라도 있었습니까. 지박사 =공대 2학년때 태양에너지를 조명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없을까하고 밤을 새워가며 골똘히 생각해본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돼 조명에 관심을 갖게 됐고 강의도 수강하게 됐습니다. 당시는 조명학을 전공한 교수가없어 부전공 교수가 강의를 했지요. 첫 시험에서 다른학생들은 모두 과락을 했는데 나만 70점을 받았어요. 복도에 게시된 성적표를보고 다들 조명박사라고 부르더군요. 그때부터 전문서적을 구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40여년간 이길만을 걸어왔지만 한번도 후회한적은 없습니다. 당시는 혼자라서 외로울 때도 많았지요. 그러나 지금은 박사 10여명 석사 50여명이 배출돼있어요. -이들이 모두 산업현장에서 활약하고 있겠군요. 지박사 =아닙니다. 아직 우리업계가 영세성을 면치못하고있어 대학출신의 고급인력들을 채용할만한 형편이 못됩니다. 사장은 학부출신들이 많습니다만 기술인력은 대학출신들이 별로 없어요. 따라서 첨단 조명기술을 개발해 제공한다해도 이를 소화하고 응용할 수있는 업체가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 조명산업의 기술수준은 어느정도입니까. 지박사 =3백여업체가 난립하고있지만 이가운데 한두업체를 제외하고는 외국 제품을 모방해 만드는 수준 정도지요. 자기공장을 갖추고있는 업체도 드물고.대부분의 업체가 하청을 주어 제품을 만들고있어요. 성능시험이라든지 창의적인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엄두도 낼수 없지요. 외국제품을 그대로 모방하는데 익숙하다보니 미적감각이나 외형은 그럴듯 한데 안전성과 기능면에서는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어떤 기업들이 국내에 들어와 있습니까. 지박사 =많은 선진외국기업들이 진출해 있습니다만 유럽의 오슬람 필립스,미국의 GE,일본의 도시바등 세계 조명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유수기업들이 국내시장의 상당부분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이들과 경쟁을 하기위해서는 지금까지 중소기업의 고유업종으로 인식돼온 조명산업의 문호개방이 시급한 실정입니다. -대기업의 참여를 허용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지박사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중소업체가 대기업의 기술전수를 소화한다해도 자금력 부족으로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양산 라인의 투자가 불가능합니다. 예컨대 CFL 한개 라인만 투자한다해도 약1백억원 이상이 소요되기때문에 국내 중소 조명업체의 자금수준으로는 1~2개 업체를 제외하고는 투자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대기업들에 문호를 개방하게 되면 중소기업들이 설 땅을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소리도 있는데. 지박사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조명산업 외길만을 걸어온 중소업체들의 공로는 당연히 인정받아야 하고 또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들은 기술과 자금을 대고 중소업체들이 부품을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는 이른바 제품의 계열화,부품생산의 계열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대기업이 손을 댔다하면 문어발 식으로 먹어치우는데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대기업들의 각성이 요구되지요. -조명이 세상을 밝힌다는 점을 생각하면 인류에 기여하는 바가 실로 크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박사께서는 평소 조명산업에도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주창해 오셨는데. 지박사 =조명은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인위적인 것이 너무 강조돼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기구도 빛도 자연 그대로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지요. 한국 중국 일본등 몇몇나라에서는 형광등을 지나치게 많이 쓰고있습니다. 그러나 서구 나라들은 85%가 백열등을 쓰지요. 형광등은 14%에 불과합니다. 인류는 태고적부터 모닥불을 피워놓고 씨족들이 둘러앉아 음식도 만들어먹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단란한 한때를 보냈습니다. 모닥불이 인류에게는 태고의 빛,고향의 빛으로 인식돼 왔습니다. 이같은 모닥불과 가장 유사한 색깔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백열등이지요. 그래서 가정에서의 백열등 사용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자연색을 그대로 재현시킨 메탈 할라이드램프가 개발돼 실용단계를 눈앞에 두고있습니다. 앞으로는 백열등과 메탈램프가 시장을 석권하게될 것입니다. -조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봅니다. 특히 국민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대단하다고 생각되는데. 지박사 =우리나라 주택의 전등실태를 조사해 본적이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1백럭스의 조도로 조명을 하고있는데 우리나라 도시가정은 이의 3분의1수준인 30럭스,농어촌의 경우는 10분의1인 10럭스 밖에 되지 않았어요. 일곱살에서 부터 17~18세까지 시력이 변화하는데 어두운데서 장기간 생활하다보면 긴장을 하게마련이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될뿐아니라 시력이 나빠지게 됩니다. 우리나라 국민학생의 40% 중학생의 50% 고등학생의 70%가 근시입니다. 이는 조명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눈의 시력저하는 물론 인간의 심리상태를 좌우할 뿐아니라 불량한 조명기구에서 나오는 과다한 자외선의 영향으로 심할경우 피부암을 유발시킬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세계 조명산업은 단지 어두움을 피하는 수단이아니라 국민건강및 정서에도 부응할수있는 하이테크제품으로 이행하는 단계에 와있습니다. -후학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박사 =기초학문연구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발전도상에 있는 나라에서는 산업발전에 도움이 되는 학문연구가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산업화에 너무 치중하다보면 기초학문연구에 소홀하지않을까 하는 우려의 소리도 제기될수 있습니다만 GNP가 2만~3만달러돼야 순수학문분야를연구할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겠어요. 기초학문은 미국과 같이 여유있는 나라의 것을 활용하고 우리는 산학협동의 근간위에서 산업발전의 뒷받침이 될수 있는 실용적인 학문연구에 치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