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9일자) 가계대출 억제방침 재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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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지난17일 확대 연석회의에서 최근의 경기동향을 점검하고 재정및 통화정책의 안정적인 운용을 강조했다. 얼마전 민간기업의 연구소들과 정책당국이 경기과열조짐에 대해 서로 다른시각을 보인 적이 있지만 정확한 경기진단이 쉽지 않다는 점만 확인한채 잠잠해졌다. 따라서 한은은 경기논쟁을 되풀이하기 보다는 경기동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자연스럽게 안정성장을 유도하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도 이점에는 전적으로 동감이지만 한가지 문제는 급변하는 경제환경에비해 경기대책의 내용이 너무 고식적이라는 점이다. 특히 경기진정책을 쓸 때나 통화관리를 강화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소비성 가계대출 억제방침의 폐단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무엇보다 먼저 특정대출의 억제방침이 금융자율화의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점이다. 특정대출이 소비성인지 생산적인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지만 설사 소비성이어서 대출억제가 필요하다 해도 대출금리를 올리는등 간접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반은행의 대출여부는 지준을 지키는 범위에서 시장상황을 자율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해야지 언제까지 창구지도를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다음으로 지적해야 할 점은 경기진정에 따르는 부담이 서민가계에만 일방적으로 전가되는 것은 더이상 용납될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94년 현재 예금은행의 총예금에서 개인의 비중은 65.3%인데 비해 총대출금에서 가계대출의 비중은 27.1%에 불과한 실정이다. 게다가 평균 대출금리도 기업대출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이처럼 금융혜택을 받기 어려우니 일반서민이나 영세상인들은 계등 사금융에 의존하다 패가망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한 가계대출의 절반 가까이가 주택금융인 데에서 알수 있듯이 가계대출은서민가계에 꼭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소비성이라고 막으면 사채에 의지할수밖에 없어 서민의 금리부담만 가중될 뿐이다. 끝으로 일방적인 가계대출 억제가 저축열기를 떨어뜨리고 소매 금융시장에서 국내 은행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몫돈 마련이 아쉬운 일반서민은 금리면에서 불리해도 가계대출과 연계된 저축상품에 가입할 수밖에 없는데 갑작스런 대출억제방침 때문에 대출을받지 못한다면 누가 그런 금융상품을 이용하겠는가. 이는 금융시장 개방을 앞둔 국내 은행의 소매금융 기반을 뒤흔들 뿐만아니라 가계저축 욕구를 크게 해치고 있다. 대기업의 은행의존탈피로 소매금융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금융시장 개방및 국제통화체제의 불안으로 국내저축증대가 어느때보다 절박한 때에 또다시 무사안일한 정책방침을 되풀이해야 하는가. 지금 우리는 안으로는 금융자율화및 통화관리의 선진화, 밖으로는 금융시장개방및 국제통화체제의 동요에 대응해야 하는 전환기에 있다. 이같은 비상시기에 수많은 인재가 있다고 자부하며 중앙은행의 독립을 소리높여 외치는 한은의 정책내용은 빈곤하기 짝이 없다. 한은은 중앙은행독립을 위한 로비에 앞서 국민들이 믿고 따를수 있는 정책개발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