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건설 부도] 비운의 대성목재 "기업유전"..또 주인찾기
입력
수정
대성목재는 비운의 기업이다. 창업이후 5번이나 넘어간 경영권이 또다시 바뀔지도 모를 처지에 놓여있어서이다. 모기업인 유원건설의 부도로 법정관리를 신청,법원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36년 설립된 이래 경영권이 천우사-조흥은행관리-신동아그룹-효성그룹-유원건설로 5번이나 바뀌었다. 특히 경영권이 조흥은행에서 신동아를 거쳐 효성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각각 1백억원과 30억원의 한은특융을 받아 잡음많은 특융의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대성은 일본인인 목촌칠랑에 의해 조선목재라는 이름으로 인천에서 출범했다. 당시 자본금은 5백원.해방후 일본인이 물러가고 당시 재력있는 기업인 천우사에 넘어갔다가 68년 조흥은행관리를 거쳐 73년 신동아해상보험 국제약품 원풍산업 3개사에 의해 공동 인수되는등 곡절을 겪었다. 지난 60년대엔 합판경기가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대졸자들이 입사를 희망하는 선망의 기업이기도 했다. 당시엔 합판이 국내수출을 주도했고 대성은 선두기업이었다. 하지만 70년대중반이후 합판산업이 퇴조하고 이후 적자로 돌아서면서 천덕꾸러기 기업으로 전락했다. 78년엔 또다시 경영권이 효성그룹으로 넘어갔다. 이후 지속된 적자로 부채가 8백억원이 넘고 자산은 부채에 비해 턱없이 부족,골머리를 앓게되자 정부는 86년1월 산업합리화업체로 지정했다. 그당시 유원건설회장이던 최효석씨는 정부와 조석래효성그룹회장의 권유로 대성목재를 인수했다. 하지만 내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인수작업에 참여했던 유원측 간부들은 "해외산림개발을 벌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실합판업체인 대성목재를 맡으라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최회장은 합판업체를 경영해 이익을 남기기 보다는 넓은 공장부지에 아파트를 짓자는 계산으로 인수를 결정했다는 설도 떠돌았다. 또 인수조건으로 주거래은행은 은행부채의 원리금상환을 10년동안 유예시켜 줬다. 일단 인수를 한뒤 유원측은 대성목재가 합판사업에 전념토록해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꾸준히 이익을 내며 사업을 꾸려왔다. 매출도 92년 1천52억원 93년 1천2백77억원 94년 1천3백74억원으로 증가했다. 최근엔 중밀도섬유판과 침엽수합판설비를 갖추며 경쟁력제고에 힘써왔으나 모기업의 부도와 지급보증부담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하는등 또다시 험로를 걷게 됐다. 대성목재는 기구한 기업유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중 하나인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