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1일자) '사회적 손실' 추계의 체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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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든 대형사고를 겪지 않는 나라는 없겠지만 그것이 잇따라 터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유기적 연계성이 높아지면 인명피해를 동반하는 대형참사의 발생은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확률적 현상"이다. 교량붕괴,열차충돌,선박침몰,통신케이블 화재,도시가스 폭발,항공기추락,교통사고,산림화재등 줄줄이 이어지는 사고의 뒤만 쫓다보면 우발적 원인에 대한 사후수습 중심의 땜질 정책만 남발되기 일쑤여서 국민의 불안은 그대로 남는다. 사고의 뒤를 쫓기보다는 사고자체를 언제나,어디서나,누구에게나 일어날수 있는 확률적 사회현상으로 보고 사고발생의 확률자체를 줄이는 사회안전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이같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먼저 각종 사고의 사회적 손실추계를 체계화하여 그 손실액수가 안전시스템 구축에 드는 경제적 투자비용을 넘지 않도록 하는 리스크 관리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경제적 손실추계( Economic Loss Estimation )방법이 보험료산정,안전시설,투자보상,조기경보체제 도입,보상분규 법정판결 등에 활용되고 있다. 그 핵심내용은 인명피해의 사회.경제적 손실을 합리적으로 따지는 것이다. 돌발적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를 확률적 계산에 의해 경제적 손실로 추계하여 사고원인 제공자들에게 분담시킴으로써 안전관리 의무이행을 강화시켜 사회안전도를 높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대형참사가 잇따라 터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의 죽음이나 장애가 가져오는 경제적 손실을 국가차원의 손실로 보아 대책을 세우지 않고 사고 관련자들 사이의 개인적 보상책임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 인명경시 풍조가 만연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사람목숨값을 돈으로 따져 그 보상책임을 사고원인 제공자와 국가가 함께 지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 있다. 헌법에 명시된대로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 인명피해에 대한 최종 보상책임도 당연히 국가가 져야 한다.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국민의 분노와 탄식이 높아지는 데도 정부가 뚜렷한 대안은 커녕 사고에 대한 책임조차 지려 하지 않는 것은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목숨값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해말로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접어들게 되어 국민 한사람이 평생동안 버는 돈의 현재가치는 경제손실 추계방법에 따른다면 6억4,000만원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최근 대구 도시가스 폭발사고로 인한 100여명의 죽음은 그 경제적 손실이 600억원을 넘는다. 이 액수가 사회안전관리를 위해 투자되었더라면 사고예방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대구 가스폭발사고를 계기로 본격 논의되고 있는 사회안전 시스템구축은 대형사고로 인한 국가적 손실을 과학적 추계방식에 의해 제대로 파악하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