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실언과 망언

"조선왕조실록"의 기사를 눈여겨 보면 언사로 파직됐던 경력의 소유자들이 의외로 많은 것에 놀라게 된다. 세종때 형조참의 고약해는 어전회의에서 수령의 임기를 6년에서 3년으로 줄이자는 건의를 했다. 그러나 세종이 들어줄 기색을 보이지 않자 홧김에 "성명하지 않다"느니 "실망했다"느니 하는 말을 내뱉었다가 그 자리에서 파직당했다. 세조때 좌의정을 지내던 정창손은 경복궁 사정전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했다가 "세자에게 국사를 넘겨주려한다"는 임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입버릇처럼 돼버린 "진실로 마땅합니다"라는 아첨기 섞인 말을 했다가 동료들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한 적이 있다. 당시 정창손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려 "아비가 집을 버리려는데 자식이 즐겨 따르는 꼴"이라고 극형에 처할 것을 주장했던 정인직도 얼마뒤 영의정이 돼 똑같은 꼴을 당한다. 1458년 봄,세조가 역시 경복궁 사정전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대취한 정인지는 "부처를 좋아하니 나라를 하루라도 보전할 수 있겠느냐""연일 버티고 내게 지지않으려 한다"는등 임금에게는 해서는 안될 무례한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이 일로 그는 의금부에 갇혔다가 하룻만에 풀려났다. 취하면 실언을 밥먹듯 했던 그는 그해 가을 경회루의 양로연에서 다시 한번 실언을 한다. 임금을 "너"라고 부르면서 "네가 하는 일은 내가 하지 않겠다"고 떠벌렸다. 취중실언은 문제삼지 않으려 했던 세조도 그 때는 그를 파직시켜 부여에 귀양보낼 수밖에 없었다. 언사로 파직된 일이 있었던 이 세사람은 경우야 어떻든 신하로서 임금에게 "실언"을 했을 뿐이어서 임금의 분만 풀리면 복직됐다. 정창손과 정인지는 80세가 넘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이리 저리 넘어져 주위의 빈축을 살때까지 관직에 머물렀다. "6.25는 동족상잔의 명분없는 전쟁"이니 "월남전은 용병으로 참여한것"이라느니 하는 발언으로 해임된 전 교육부장관 김숙희씨의 경우를 "실언"으로 보기는 어렵다. 아무리 문민정부 각료의 한 사람으로서 "문민"의 우월성을 강조하려했다고 해도 그렇다. 오만에 가득찬 독단적 생각에서 나온 "망언"일 뿐이다.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말하지 않느니만 못하고 말은 바로 혀를 베는 칼이라는 옛말을 공직자들이 곱씹어 말을 아낄 때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