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버려진 대학1년생 .. 김향숙 <소설가>

고3의 그 지긋지긋한 터널을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란 희망으로 인해 가까스로 지나올 수있었던 우리집 큰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올3월 그토록 바라던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이라는 신세계,책도 마음껏 읽고 여자친구도 사귀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점수를 따기위한 공부가 아닌 참공부를 해보는 대망의 대학생활. 이름으로만 대하던 훌륭한 교수님을 스승으로 만나게 될 것이란 기대를 하는 그애를 보며 나는 마치 그애와 함께 새롭게 대학생활을 시작하듯 가슴이 설레곤 했었다. 우리 세대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비해 너무나 달라진 사회 경제적 여건들과 풍요로워진 생활만큼이나 우리 아이들의 대학생활 역시 훨씬 더 풍요로울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벅찼었다. 대학입시라는 중압감에 눌려 지내며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쳇바퀴 돌듯 제한된 삶에서 벗어날수 없었던 그 많은 날들. 나는 한시바삐 그애가 그 길고도 숨막히던 날들로부터 자유로워져 다양하고도 왕성한 호기심으로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있는 대학의 문으로 들어서길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두달간의 공부를 마치고 중간고사를 막 끝낸 큰애의 대학생활은 솔직히 말해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아이 또한 자신의 대학생활이 그토록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말을 하곤한다. 같은과 학생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돌림노트에 적혀있는 다른 학생들의 글에서도 대학이 기대했던 것과 달라 실망이라는 내용들이 여럿 눈에 띈다. 삶의 마지막 골인지점에 들어서기라도한 것처럼 무기력해진 큰애를 볼때면 큰애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여기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대학의 교양과정 전반에 대한 새로운 고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된다. 대학입시를 치르기까지 너무나 힘들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우리집 아이의 경우 형편없이 게을러진 모습을 보여주고있어 대학 신입생들은 너무 많이 놀며 지낸다는 말을 실감하지 않을수없다. 대학에 입학하기전까지 그애들이 지내온 지독히도 타율적인 생활의 벽이 너무나도 높았던 탓인지, 모든 것을 학생자율에 맡기게 마련인 대학생활에의 적응이 쉽지 않은듯 하다. 힘들게 고3을 보냈으니 좀 놀아야겠지 하고 생각도 해보지만 아무래도 고3과 대학신입생의 사이에 완충의 시간같은 것이 필요하리라는 생각 또한 떨쳐버릴수 없다. 숨도 쉴수 없을 정도로 꽉 짜인 수험생의 나날들로 부터 어느날 하루아침에 완전한 자율속으로 내던져진 우리 대학1년생들. 교양학부 과정에서만큼은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좀더 세심하게 짜여진 지도를 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 대학은 학과선배들이 신입생들의 모든것을 이끌어주는 스승노릇을 하고있는 양상인데 한두살 남짓인 선배의 스승노릇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들을 이끌어 주는 스승의 부재,교양학부과정의 부실함으로 인해 미래의 주역이 될 우리신입생들은 지금 표류하고 있다. 연구시간도 모자라는 형편에 무슨 학생지도냐고 한다면 차라리 교수진들을 두 분야로 나누어 연구에 전념하는 연구교수와 강의및 학생지도를 전담하는 강의교수제도를 두는 것이 어떨까 한다. 신입생이라고 무작정 놀도록 내버려 두기엔 대학의 4년은 우리 인생에서 너무나도 소중하면서도 짧은 시간이기에 버려진 아이들 같은 대학1년생들은 마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