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시론] 노사문제의 인간적 접근..김식현 <서울대 교수>

현대자동차와 한국통신의 노사분쟁은 두 기업의 성격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고있다. 현대자동차는 한국의 자랑이라고 할만큼 모든 한국인이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기대를 거는 기업이다. 자동차산업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는데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산업이다. 그러한 산업이 바야흐로 새로운 도약을 기약하는 단계에서 이런 분쟁이 일어난 것이다. 품질의 신뢰성과 원가절감등 생산혁신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노사관계가 이 모양으로 나타난 것은 그원인이 어디에 있든 우리의 기대를 무너뜨린 사건임에 틀림없다. 조기수습에 전력을 다하여 정상조업에 들어갔으나 앞으로의 노사관계가 적극적인 노사협력의 바탕을 이루어 나가지 않으면 모든 국민이 기대한 세계적 기업으로 발전하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한국통신은 현대자동차와는 다른 차원에서 우리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정부기관에서 분리된 공기업으로 그동안 우리나라가 현단계까지 발전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통신망의 확장을 통하여 공기업의 귀감이 되어왔다. 이와같은 기업이 갑자기 파업을 한다는 것은 통신망이 갖는 중요성에 비추어 그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생각할때 모든 국민에게 너무나 큰 충격을 주었다. 정부와 경영진의 강경대응에 일시적인 후퇴를 한 노조가 계속 힘의 대결을 선언하고 있어 비록 외형상 진정을 시킨다 하더라도 노사관계의 성격상 여러가지 후유증이 남을 것임에 틀림없다. 어쨌건 두 기업의 성격상 이번 노사분쟁이 겉으로는 쉽게 진정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와같은 대증요법으로 진정된 노사관계는 표면화된 분쟁이상으로 많은 희생과 비용을 수반한다. 노사관계는 부부관계와도 같아서 제3자가 이해할수 없는 세계이며 오랜 인고의 역사를 거쳐서 진정한 협조관계로 발전한다고 하는 발전단계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사자들과 중재자의 성실한 분쟁해결 노력없이는 언제나 파탄이 가능하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신임노동부장관은 취임사에서 노사관계를 인간관계로 정의하고 인간적 대화로 풀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인간관계는 흔히 내면적 집단감정의 관계라고도 하는데 조직에서나 사회에서 흔히 자생적 집단이 형성되는 원인으로 꼽고 있다. 선진국에서 노사관계문제 해결을 위한 인간관계연구에서 인간관계의 특징을 비논리성에서 찾고 있다. 이는 "감정의 논리"라고 할수 있는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호의를 갖고 믿음이 가면 사실을 모두 좋게 판단하며 그 반대의 경우는 나쁘게만 보게되는 것은 모두 이런 감정의 논리 때문이다. 즉 감정이 사실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단감정은 좋을때는 팀정신,사기,신바람등으로 나타나지만 반대로 나쁠때는 증오와 적대감,집단폭력등 극단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기업별 노동조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기업별 노조는 사실상 서구적 의미의 노조의 역할을 할수가 없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노조의 가장 큰 역할은 고용의 보장이며 조합원은 안정된 고용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그러나 현재의 노사관계제도상 해고하면 사실상 노조의 보호를 받을수가 없게끔 되어있다. (분쟁당사자의 조합원자격을 인정하는 제도가 있으나 이는해고후에 노조의 계속적 지원을 보장하는 제도가 아니다) 따라서 기업이 노조를 대신해서 종업원의 고용을 보장하는 신뢰관계를 만들지 않으면 근본적인 노사협조는 이루어지기 어렵게 되어 있다. 기업별조합에서 노사관계의 바탕이 되는 인간관계는 마치 가족관계와 같은 기대를 근로자들이 갖게하며 이는 종족적 단일성에 바당을 둔 우리의 문화적 전통이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이와같은 기대를 충족하며 신뢰의 감정에 바탕을 둔 기업노사관계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경영의 인간관계철학이 가족주의적 공동체의 진정한 표현으로 나타나야 한다. 종업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공유하는 심정의 논리없이는 기업별 노사관계의 좋은 면 보다 나쁜면이 두드러질 것이다. 따라서 노사관계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로 형성되려면 다음과 같은 전략적인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는 위를 보는 인간관계에서 아래를 생각하는 인간관계가 평가되는 리더들이 조직의 지휘자가 되는 제도가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가족주의적 공동체이기를 기대하는 종업원에게 아랫 사랑이 없는 지휘자는 적격자라 할수 없다. 따라서 인간관계적 감독으로 이를 극복해야 할것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아랫 사랑을 하는 지도자를 만드는 조직내의 평가,보상및 개발시스템이 경영전략의 중심과제로 되어야 할것이다. 둘째 끊임없는 직무참가로 종업원의 창의를 개발하고 조직의 혁신을 기하여 경쟁력을 육성하고 조직의 고용기회를 개발해야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노조를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평소에 긴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여 노동조직의 대표자를 소외시키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물론 이런 조건을 만들려면 노동조합도 보다 성숙하고 긍정적인 자세를 가져야 할것이다. 노동조합의 성숙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노동관계법규의 조속한 개정과 정비가 필수적이며 노동조합이 자본주의의 건전한 발전에 적극적 기여를 한다는 이념적 확신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