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6일자) 조폐창에서 돈이 증발한다면

돈 백만원의 증발이나 도난을 가지고 너무 소란을 펴도 눈총받을 세상이지만 도난장소가 정부의 조폐창(조패창)이다보니 공사사장이 즉각 해임되는 엄중조치가 내려져도 성에 차질 않는다. 한마디로 중앙은행의 발권은 국가 공신력의 상징이기에 출고전 조폐창안에서 금액 다과에 상관없이 지폐뭉치가 1,000장이나 행방을 감춘 사실을 가벼이 보기 힘들다. 보고는 늦게 받았으나 대응을 신속히 한 당국의 처사에 납득이 간다. 과거정권의 습성을 떠올리면 이번 사건쯤 요란한 발표없이 조용히 처리하는 것은 쉬웠을지 모른다. 막상 당로자들이 이정도쯤 자기선에서 해결함이 회사를 위해서도 좋다고 합리화했거나, 위는 위대로 다가오는 선거에 미칠 악영향 고려라는 정치적 판단을 했다면 그랬을 수도 있다. 그점에서 재경원장관이 대통령에 보고,지침을 받아 조폐공 사장의 즉각경질등 전말을 회견을 자청해 밝힌 점은 평하가할만 하다. 그렇다고 어떤 나라에도 드문 국내초유의 이 사건이 내포한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문책인사가 능사가 아니라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재발방지에 역점을 두는 정책적 배려가 뒤따라야 옳다. 첫째 아직까지 드러난 사건의 윤곽으로 제도상의 결함이 의심스럽다. 현찰을 제품으로 취급하는 조폐창은 도난사고를 인성이나 규율에 맡겨 예방하는데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다. 장물이 바로 현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계자들은 국내외서 축적된 조폐창운영 노하우를 항시 수집하여 완벽을 기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없다. 그럼에도 불량제품에 대한 보충방식을 원가절감 목적으로 대폭 변경했고,얼마안가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제도변경에 수반될 결함의 검토와 에방의 소홀이 엿보인다. 둘째 국영기업에도 경영합리화는 불가피하나 업무의 본질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점이다. 지폐의 수명단축과 발권비 팽창에 따른 조폐공 경영의 악화가 오랜 난제였음이 사실이라면 정부 한은 공사등 당로자들이 공신력에 영향이 파급되지 않게끔 정책적 고려와 대비를 했어야 옳다. 셋째 현장과 공사간부의 사건처리 태도다. 조폐창에서 현찰이 없어진 사실의 중대성에 대한 판단능력에서 개인의 구체적 적격성,이런 일을 있게한 공사의 일반적 작풍 모두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런 성질의 사고라면 피해액 다과간에 즉시 계통을 따라 최고책임자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가고 연후에 발표를 포함한 사건처리 방법이 모색돼야 옳았다. 창에서 사흘,사장선에서 하루등 보고여부 판단이 상식수준 이상 길었다. 지휘계통의 간부가 갖는 재량은 중요하다. 시시콜콜 위로 보고하여 지시대로 순종만 한다면 한 나라에 대통령만 있으면 되지 중간간부가 필요없다. 계층마다 자기책임으로 처리할 직무는 있어야 조직이 산다. 이번 일은 그 판단 잘못이다. 단돈 백만원이 미칠 당장의 혼란은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공신력이 조그만 일로도 손상당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음을 유의하여 정부는 떳떳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밝혀 다시는 재발없기를 바란다. 근본책이 마련되면 그야말로 전화위복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