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일자) 북경회담 성사를 고대하며

북경의 남북한 당국자 쌀회담은 남북접촉치고는 매우 신속한 결론을 내린 회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비쳐져 다행이다. 이는 쌍방이 현실적 필요성에 입각,실용적 접근으로 문제를 풀려든다면 어떤 남북대화도 결코 불가능하다고만 할수 없다는 교훈이 됨직도 하다. 지난달 15일 김영삼대통령의 대북 곡물 무조건제공 용의표명과 25일 방일중인 북한 국제무역촉진위 위원장의 "남한쌀 수용가능" 발언으로 표면화된 대북 쌀제공 논의는 공교롭게 일본 쌀과 뒤엉켜 20여일간의 혼선을 빚음으로써 결말이 쉽지 않은 상황에 빠져왔었다. 심지어 한때는 북한이 일본쌀을 빨리 받기 위한 미끼로 남한 당국자와 회담시늉만 할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했다. 그러나 주말주초 사흘간의 북경 현지발 보도나 19일 정부당국자의 설명을 종합할때 남한쌀 제공은 최소한 5만t 외상공여에 구체적 합의점을 담고 있어서 회담의 타결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어떤 남북 대화인들 난제아닌 것이 있는가. 그중에도 생필품을 둘러싼 대화는 매우 까다로워 고도의 신중을 요한다. 주식인 쌀 곡물은 물론 의류등 기초 생필품의 수수에 주제가 미치는 한 유무상을 불구,실제 원조의 성격을 띠는 이상 체제의 체면이 걸려 민감을 극한 것이 통례였다. 지난 84년 북측의 쌀 시멘트등 수재구호 제의를 남측이 수용하여 실제로 물자가 반입된 배경은 이번과 판이하다. 그해 남쪽에 수해가 극심했음은 사실이나 량도가 달렸던 것도,외국쌀 도입 여력이 급박했던 것도 물론 아니었다. 오직 모처럼의 북측 제의를 수용함이 관계개선에 보탬이 되리라는 국민총의가 성립된 결과였다. 반면 중국 이집트등 여러 나라에 쌀 외상도입을 두루 타진한 끝에 좌절,일본으로 방향을 바꾸는 과정에서 남측의 쌀제공제의를 경청하기에 이른 전말은 현하 북한이 처한 식량사정이 은폐로 일관하기엔 한계가 있음을 짐작케 만들고 남는다. 이렇게 명백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시공간 불일치 가능성을 항상 내포한다. 우리가 가장 많이 경험해온 남북관계상의 불행은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서로 믿지 않으려는 상호불신에 있다. 남북한 당국자는 이점을 솔직히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쌀문제도 그렇다. 북측은 자국내의 식량부족 현상을 끝내 은폐하는데 신경을 썼지 진지하게 문제에 대응하지 않았다. 또 그러한 진상을 숙지하는 남으로서 도움보다는 북을 궁지로 몰아가고픈 충동에 얼마큼 사로잡힌게 사실이다. 이번 북경회담은 어느 남북접촉과도 성격이 다르다. 마주하는 양측 당사자가 가장 진한 민족문제,즉 식량문제를 다룬다는 사명감에서 솔직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남측은 원조제공자라는 자부심을 자제하며 수수자인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북측 또한 엄연한 현실을 계속 호도 왜곡함에 한계를 자인해야 한다. 그 점에서 양측에 똑같은 용기가 필요하다. 쌍방은 점진적 접근 모색외는 대의를 살려 쌀회담에 거는 민족적기대에 부응하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