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 삼풍 보상능력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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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붕괴참사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삼풍의 보상능력여부가 주목을 끌고 있다. 삼풍백화점의 운영주체인 삼풍건설산업은 작년말 현재 자산이 1천4백44억원인데 비해 부채는 1천6백71억원으로 부채가 2백27억원이나 더많은 속빈 강정의 상태이다. 그러나 이 삼풍건설산업회장(73)의 소유인 청계천7가 청평화상가의 시가는 6백억원에 달해 이를 처분하면 어느정도의 보상금은 마련할수 있으며 평당 1천만원정도의 임대보증금을 제외하면 4백억원정도가 남게 된다. 주목할 것은 이회장의 아들인 이한상삼풍건설산업사장 명의로 된 제주도의 여미지식물원으로 이식물원은 대지 11만2천4백99평방m에 건평이 1만6천6백60평방m 이고 현재 공시지가는 2백13억원 정도지만 시가는 1천억원을 호가하고 있다. 청평화상가는 처분시 입점업체들이 평당1천만원 상당의 권리금을 요구할 경우 실제처분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이며 숭의학원도 학교법인이라는 문제가 걸려있다. 이와함께 건물이 붕괴돼 전혀 자산가치가 없어진 상황이라 보상능력은 더 떨어질수 밖에 돼있다. 하지만 이회장은 법인명의의 재산외에도 전국 주요도시의 금싸라기 땅과 건물 상가등을 다수 소유,그액수가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사상자들이 엄청나고 입점업체피해등도 막대하지만 결국 보상의 열쇠는 사실상 빈껍데기에 불과한 삼풍건설산업 법인보다는 이회장 개인의 부동산이 쥐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처분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볼수 있다. 삼풍건설산업의 창업주인 이회장은 부동산붐을 타고 부의 성을 이룬 전형적인 부동산벼락부자로 알려져 왔다. 3공화국시절 육군준장으로 예편,중앙정보부 창설멤버로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41세때인 지난63년 국학대 정치학과를 졸업하며 미군 군납건설과 전기공사업을 하던 동경산업을 설립,사업가로 첫 발을 내딛었다. 동경산업은 67년 토목공사면허를 취득하면서 삼풍건설산업으로 상호를 바꾸게 되는데 바로 이회사가 삼풍백화점의 운영법인이다. 이후 이회장은 주택건설 관광조경 등에서 뛰어난 실적을 올리며 성장가도를달려왔다. 75년에는 해외건설에도 진출,요르단 등을 중심으로 중동지역에 진출했으나 중동붐의 퇴조로 큰 재미를 보진 못했다. 해외건설면허를 자진반납한 그는 국내공사에 주력,사업기반이 된 을지로 삼풍상가와 청계천 청평화시장 등을 지어 임대분양하며 부동산개발업에 눈을 뜨게 된다. 74년 현 삼풍아파트부지인 5만7천평의 땅을 매입한 이회장은 이땅을 미군전용숙소와 음식점 등으로 임대해오다 87년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는데 법원단지와 한양 삼호 삼익 등 아파트가 들어서며 강남의 노른자위 땅으로 변하는 행운을 맞는다. 이회장은 87년 유통업이 유망하다는 판단하에 아파트단지옆에 삼풍백화점을착공,89년12월 문을 열었으며 주택건설업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계속 줄어들었다. 삼풍건설산업과 함께 학교법인 숭의학원 청계천7가의 대지2천평짜리 청평화시장및 대구소재 외국인임대전용의 삼풍아파트 등이 그의 소유다. 이회장은 3남1녀를 두었다. 현재 차남 한상씨가 대표이사 사장으로 3남 한창씨가 전무로 백화점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장남은 70년대 중반 해외건설현장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딸 경희씨는 숭의학원 산하의 숭의유치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