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경] 기상천외의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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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순을 잘해야 주식을 살 수 있다. "축구 골대를 돌아 집합-"하는 명령이 떨어졌으니 죽어라고 뛰는 수 밖엔 도리가 없다. 오직 1등을 해야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자격"을 준다. 외국인 한도가 확대된 지난 1일에 열렸던 선착순 경기에서는 대우증권이 1등을 해 삼성전자등 일부 주식을 독식했다. 그러니 다른 증권사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외국인 주문을 낼 때는 아침 8시에서 0.1초도 틀리지 않은 시각에 맞춰 "땡-"소리가 나자 말자 단말기를 두드려야 한다. 그래서 증권사 국제부 직원들은 새벽부터 단말기 앞에 앉아 호흡까지 고르며 결전의 순간을 기다리는 일을 되풀이 하고 있다. 평소에도 이 이상한 선착순이 계속되고 있다. 하루중에도 한도가 발생하면 그 순간에 뛰어들어가 주문을 내야 한다. 그러니 주문담당 직원은 오줌누러 갈 시간도 없어진다. 외국인 주문 처리는 주문접수 시각이 문제일 뿐 가격은 아예 불문이다. 결국 외국인 주문은 "하한가 사자"일색이다. 다른 사람이 비싼 가격으로 사고 싶어도 달리기를 못하면 주문 자체를 낼 수가 없다. 시장의 본질인 가격기능은 실종이고 결과적으로 운 좋은 외국인들은 우리 주식을 싼값에 가져간다. 보다 잘달리기 위해 대우증권은 12억원을 들여 새컴퓨터를 샀고 13대의 기계를 삼성전자 한종목에 정조준해 놓고 단말기를 두드려댔다. 다른 증권사들도 "컴퓨터,컴퓨터"를 외치며 선착순을 돌고있다. 물론 선착순을 시키고 있는 쪽은 증권당국이다. 주문단계에서 한도를 적용하는 것이 관리에 편하다는 게 이유다. 외국인 매매를 위해 굳이 새로운 전산 프로그램을 돈들여 만들 필요가 없다는 얄팍한 주장도 깔려있다. 그러나 게으른 발상이다. 증권사들이 결과적으로 더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는 설명도 구차하다. 문제는 공정한 게임의 룰이다. 수작업을 해서라도 외국인 주문을 따로 모아 가격과 시간에 의해 매매를 체결시켜야 한다. 이것은 증권시장 매매제도의 원칙에 관한 부분이고 한국증시의 신뢰에 관한 문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