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7일자) 은행신탁제도 손질은 미봉책

재정경제원이 지난 5일 발표한 "은행신탁제도 개선방안"에 따르면 내년도 개발신탁 수탁한도 증가율은 올해말 기준으로 15% 이내로 제한되며 특정금전신탁과 금외신탁은 가입자가 신탁자산운용방법을 한가지로 지정하게 된다. 또한 다음달부터 통화채 의무인수비율및 제조업 의무대출 비율이 낮아지는등 신탁자산운용의 자율폭이 확대될 예정이다. 개발신탁은 지난 5월말 현재 수탁고가 양도성예금증서 발행액을 크게 웃도는 35조8,000억원에 이를 정도로 은행의 중요한 돈줄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번에 개발신탁 규모를 제한한 까닭은 최근 개발신탁이 이른바 "꺾기"수단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은행대출을 받을때 대출금액의 일정 비율을 금리가 싼 예금에 들도록 강요받는 "꺾기" 또는 양건예금은 우리 금융계의 고질병이다. 시중금리가 하향 안정되고 정부가 강력히 규제함에 따라 지난 몇해동안 뜸했던 꺾기가 호황으로 기업의 자금수요가 늘어나자 다시 활개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중금리의 오름세를 부채질하는 부작용을 피할수 없다. 이밖에도 양도성예금증서(CD)와 함께 통화관리 대상에서 제외되는 신탁계정에 엄청난 돈이 몰림에 따라 통화관리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일부에서는 개발신탁을 폐지하고 은행의 금융채발행을 자유화하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신탁대출,기업어음매입,주식및 채권투자 등에서 개발신탁이 차지하는 비중과 이에 따른 혼란을 우려해 포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같은 부작용이 없다고 해도 개발신탁의 수탁고를 제한한 이번 조치는 어차피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꺾기가 만연하게 된 금융풍토의 왜곡현상이 고쳐지지 않는한 새로운 꺾기 수단이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3단계 금리자유화가 진행중이고 금융자율화와 금융시장 개방계획이 확정됐지만 아직도 국내 금융기관,그중에서도 은행들이 피부로 느끼는 규제강도는 여전한 실정이다. 특히 예대마진축소,부실채권누적,낮은 생산성등 상대적으로 불리한 경영환경에서 수익성을 높여야 하는 은행들은 변칙적인 영업활동을 벌이기 쉽다. 왜곡된 금융풍토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금융기관 뿐만 아니라 자금수요자인일반기업및 감독기관의 책임도 크다는 점을 빼놓을수 없다. 삼풍백화점 붕괴참사를 비롯한 잇따른 대형 사고에서 보듯 부실공사 안전관리무시 환경오염 등을 밥먹듯이 저지르면서 돈벌이에만 급급하니 투자수익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투자수익률이 높으니 자금수요가 많게 되고 따라서 꺾기로 웃돈을 주더라도 대출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지킬 것은 지키는 성숙한 사회가 될때 떼돈을 버는 일은 없어지고,투자수익률이 적정수준으로 낮아질때 만성적인 초과자금수요는 사라질 것이다. 정책당국도 임시변통에만 급급하지 말고 근본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