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세살버릇 .. 서기원 <소설가>

민족 혹은 종족집단에는 형성초기의 핵이 있다. 거기에 역사적 경험이 겹쳐진다.(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우리의 그런 것은 뭣일까. 두가지가 있음직하다. 유목집단과 농격취락의 생존양식이다. 선사시대 북방의 초원에서 작은 무리를 집으며 이동하다 구만주지방을 거쳐한반도에 정착한 뒤로는 농사를 지 으며 살아왔다. 대개 물줄기를 따라 고립된 산간마을이다. 유목집단은 획득할수 있는 자원과 통솔력의 한계 때문에 많아야 수십가족에수백명이었을 것이다. 이 집단의 생존은 지도자의 능력, 특히 예견과 선지에 좌우된다. 물과 풀이 있는 곳을 찾아 집단을 이끌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산간마을의 생존조건은 하늘이며 기후이다. 예견이나 선지보다 계절을 놓치지 않는 부지런함과 경험이다. 질서 파괴자는 마을의 경험많은 어른들이 훈계 제재한다. 정말 안들면 추방한다. 그래도 해결이 안될때 관아에 가서 재판을 받았다. 이 원형은 구조로 돼있다. 물론 맨 밑은 유목형이다. 상항에 따라 이 두가지의 경향성은 따로따로 들어난다. 동시에 혼합해서 나타나기도 한다. 지금 우리사회의 불안전은 유목집단의 "리더"가 물과 풀이 있는 곳을 예시하지 않고 있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혹은 "리더"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사회혼란은 마을 어른들이 사라졌거나 있어도 권위가 없어져 "자치능력"을상실한데서 연유된다. 관아에 갈수 밖에 없는데 관아의 재정 역시 신뢰하지 못한다. 이 두 "버릇"을 알아차린 "리더"가 역사상 몇사람 있었다. 박정희도 그중의 하나이다. 허긴 "리더"만 얘기할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민주화라는 것을 잘못 알고 있으니 "리더"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가축을 기르기 위해서는 각기 소임을 다해야 하는데 일은 게을리하고 돼지부터 잡자고 아우성이다. 민주화 아닌 아귀다툼인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