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3일자) 또다른 안전의식 부재 사례

고리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누출사고는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안전의식이 어느 수준에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수 있다. 특히 이번 사고는 안전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참사가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은 시기에 터진 사건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주는 충격은 더욱 크다. 물론 이번 사고는 미국의 스리마일 섬이나 구소련의 체르노빌의 경우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체르노빌 사고는 원자로 자체에 이상이 생겨 발전설비가 비정상적으로 작동됨으로써 일어난 기술적인 사고였다. 반면에 이번 사고는 핵폐기물의 포장.운반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순전히 인재에 의한 사고인 것이다. 현행 원자력관계 법령은 핵폐기물을 포함한 방사성 물질의 누출사고를 막기 위해 방사성 물질을 운반하는 용기의 오염도를 측정하고 포장상태도 미리 체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원전의 안전관리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처가 사고원인을 조사해보니 그동안 폐기물드럼 표면의 오염도 조사가 시늉만 한 형식적인 조사로 일관해왔다고 한다. 또 운반용기에 대한 방사선량률 조사에서도 측정 기록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니 결국 실제 검사는 하지 않은채 허위 검사기록만 작성해온 것이다. 핵폐기물을 운반할 때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조사마저 원전 현장에서 외면당해온 셈이다. 법률로 규정한 안전수칙을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한낱 번거로운 일로 여겨 대충 끝내고 적당히 넘어가려는 안이한 복무자세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소행이다. 게다가 사고발생 사실을 일주일이나 지난 뒤에 주무부처에 늑장보고한 행태도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는다는 차원에서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사고가 난 뒤에 외부에 알려질세라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정부당국의 대응태도도 문제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비밀주의 행정관행이 몸에 밴 탓인지는 몰라도 사고만 나면 무조건 은폐하려는 태도는 더 큰 대형사고의 원인이 된다는 점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또 누출된 핵폐기물질을 원천적으로 제거하기 보다는 사고현장의 오염지역을 부랴부랴 시멘트로 포장한 뒤 오염물질을 완전히 없앴다고 하는데 정부 얘기를 과연 액면그대로 믿고 안심해도 되는건지 찜찜한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핵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사고는 사실 대수로운 게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 국민은 대부분 핵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원전사고에 대해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노이로제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는 점을 당국은 명심해 주기 바란다. 따라서 아무리 경미한 사고라 해도 즉각 국민들에게 발생사실과 원인 처리내용을 소상히 알려주는게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핵발전소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가 높아지고 원전의 추가건설이나 핵폐기물 처리장 물색과 건설작업도 그만큼 용이해질게 아니겠는가. 이번 사건의 보다 명쾌한 해명과 단호한 문책이 있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