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대일통상협상의 시사점 (상) .. 앨빈 토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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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의 군대가 중국에 공산국가를 수립한 1949년직후 분노한 공화당의원들과 워싱턴의 중국 로비스트들은 장개석과 국민당이 몰락한데 대해 민주당 정부가 책임지라며 악랄하고 매카시적인 캠페인을 벌였었다. 이들은 "누가 중국을 잃었느냐"고 물으면서 책임소재를 추궁했었다. 미국과 일본이 30년대이후 가장 파괴적인 통상협상을 매듭지은 지금 미국인들은 치졸하고 분열적인 과거사가 재현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이번에는 보다 규모가 크고 심각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미국인들은 5년내지 10년이내에 "누가 중국을 잃었느냐"는 추궁이 아니라 "누가 아시아를 잃었느냐"는 추궁을 듣게 될 것이다. 통상문제에 집착하고 있는 클린턴정부가 일본과의 군사적 전략적 문화적 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한채 체면이 매우 중시되는 지역에서 체면을 무시하는행태를 자행하는 동안 중국은 지역안정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했다. 클린턴정부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에 맞서도록 교묘히 부추기는 대신 최악의 시점에 대만 총통의 미국방문을 허용함으로써 중국의뺨을 갈기고 말았다. 아시아 동맹국들의 지지를 받아내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에게 총부리를 겨눈셈이 된 것이다. 시덥잖고 잘못된 자동차협상을 마친뒤 미국과 일본은 서로 자기네가 이겼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한마디로 미국의 행동은 전략적으로 적절치 못했다. 승리했다고 자랑하는 협상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첫째로 불과 1년전까지도 클린턴정부가 국익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표현했던 다자간 통상체제와 세계무역기구(WTO)가 약화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국은 양국간의 자동차분쟁을 WTO의 분쟁처리에 맡기자는 일본의 요청을 거부함으로써 새로 출범한 국제기구를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둘째는 미국이 환율 보호주의 형태로 달러화의 가치하락을 부추겼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과거의 정부에서도 활용했던 전략이다. 미국은 지금 "제2물결" 수준에 머무를 만큼 뒤처지고 경쟁력이 부족한 자국 제조업체들을 달러화의 가치하락을 통해 보호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을 몰아붙였던 원인으로 지목되는 무역적자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따지고 보면 미국이 일본을 몰아붙인 진짜 이유는 무역적자가 아니라 국내정치와 관련되어 있다. 클린턴정부가 통상문제에서 일본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했던 것은 차를 수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표를 얻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3대 자동차업체 관계자들조차 일본에 더 많은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을 수출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미국인들은 대부분 일본인들이 영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도로의 왼쪽 차선으로 주행하며 핸들이 자동차의 오른쪽에 부착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자국 자동차업체들이 최근까지도 일본인들에게 왼쪽에 핸들이 부착된 차를판매하려 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가스값이 비싼 일본에서는 소비자들이 소형엔진이 장착된 소형차를 선호하는데도 미국 자동차업체들은 이들에게 대형차를 팔려 했다는 사실도 미국인들은 잘 알지 못한다. 클린턴정부의 통상대표인 미키 캔터는 의회와 언론에 제공한 정보에서 미국측이 안고 있는 이같은 문제들을 슬쩍 빠뜨렸다. 클린턴과 캔터가 일본을 몰아붙인 이유는 자동차노조로부터 표를 얻고 자동차업계에서 정치자금을 얻어내기 위해서였으며 차를 더 많이 수출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세번째는 일본 경기가 깊은 수렁에 빠지고 달러가 지속적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일본인들이 미국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환율 위기를 무릅쓰면서 백악관이 주도한 반일본 선동공세는 일본인들의 자금회수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일본인들은 미국에서 돈을 빼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아시아에 투자하려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