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권력 .. 서기원 <소설가>

권력의 원형은 폭력일 것이다. 동물에서 인간으로 지양했을때 폭력이 다소 세련되어 정치가 생겼다고할 수 있다. 민주제도는 그중 세련되고 점잖은 권력싸움의 틀이다. 그러나 본질은 여전한 폭력, 혹은 물리적 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치싸움에 열중한다. 구경꾼도 야구보다 더 재미있어 한다. 구경꾼들이 품고 있는 투쟁본능을 대신해주는 것이다. 그 노골적인 것이 권토이다. 태평성대에 있어서는 투쟁본능을 스포츠나 문화겨루기로 어지간히 해소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뭔가 허전하다. 정치판에 큰 싸움이 나기를 은근히 기다린다. 조선왕조를 말할때 당쟁의 폐해부터 으레 도마위에 올려놓는다. 마구 칼질을 한다. 그러나 우리만 당파싸움을 했던 것은 아니다. 대충 보면 10년 주기로 한국 또는 정변이 있었다. 백성을 위한 굿판의 기능도 했던 것이다. 거드름피우던 대감들이 매맞고 귀양가며 시약을 받았다. 후련해 했을 것이다. 그런 굿판의 반복이 5백년을 지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필자는 최근의 정치판을 구경하면서 다른건 변해도 정치는 좀처럼 변하지않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정치하는 사람들의 자질탓인가. 부분적인 설명은 될망정 다는 못된다. 권력이 백성들 삶에 끼치는 영향이 큰 까닭이란 말도 충분치는 못하다. 한국사람이 다름 나라 사람보다 정치를 더 좋아해서인가. 그런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그 역시 막연한 얘기다. 이러저러한 원인외에 수백년동안 몸에 밴 버릇을 보탤만하다고 생각한다. 또 ''평화애호민족''일수록 내면에선 투쟁본능을 억제하고 있다. 억제된 본능은 어떤 형태건 탈출을 원한다. 지난날엔 ''대의명분''이 정치싸움의 쟁점이요 무기였다. 칼을 숨기고 관념을 내세웠던 것이다. 선거에 있어서는 떡과 술을 내세우는게 흔한 풍경이지만. 이제 우리의 본능을 만족시켜줄 큰판이 꾸며지고 있는 듯 하다. 대중 매체들은 점잖게 꾸짖고 있지만 내심 싫지는 않은 눈치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6일자).